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연지원
  • 조회 수 135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5년 8월 31일 11시 48분 등록

 

 

[짧은 소설] “다음 순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입니다. 내빈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매년 5월 19일, 남양주 해유령 전첩지에서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육지전 승리를 이끈 신각 장군 추모 제향식이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카메라에는 큼직한 셔터가 달렸다. 하늘은 잔뜩 흐렸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빛을 들이는 정도를 잘 조절해야 하기에 날씨는 중요한 변수였다. 그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선 이들의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사회자는 순서를 진행해 나갔다.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는 이들의 모습 두 장을 가까스로 찍어냈다. 그는 디지털 화면을 통해 방금 찍은 사진을 보며 사냥꾼이 느낄 법한 포획감을 느꼈다. 사진 속 주인공이 진지하면서도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현장 분위기는 사진과 달랐다. 스피커에서 녹음된 애국가가 흘러나왔지만, 참석한 이들은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지 않았다. 대다수가 입만 오물거렸다.

 

중요한 식순이 시작됐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차례대로 술잔을 올렸다. 그는 이 장면들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저들의 제복이 파랑색 자주색이라 좋은 사진을 연출했다. 그는 신각 장군을 몰랐지만 사진 촬영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그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런 행사들은 비슷한 장면이 반복됨을 경험으로 아는 그였다. 제향식은 진행 중이었지만, 일은 끝났다. 엄숙한 분위기 탓에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마음은 이미 퇴근이었지만, 너무 빨리 나갈 수도 없는 일이라 자리를 좀 더 지켰다. 어느 단체의 대표가 나와서, 최초로 외적을 무찌르고도 임금의 성급한 처벌로 억울하게 생을 마친 신각 장군의 충정을 기리는 낭독문을 읽었다. 충현사 한 켠에는 제향식 내내 한 청년이 신각 장군을 기리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서 있었다. 예법(禮法)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사진작가는 기관지 편집인에게 사진을 보냈다. 편집인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은 칼럼니스트의 글과 함께 기관지 월보에 실렸다. P는 우연히 신각 장군 제향식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신각 장군의 삶을 다룬 기사도 울림이 있었지만, 특히 열정적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어르신들을 담아낸 사진에 감동했다. (끝)

 

IP *.10.221.11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76 하이에나 독서가가 읽은 책들 [2] 연지원 2013.11.25 2576
2075 [나는 애호가다] 필로스이기를 꿈꾸다 연지원 2015.01.05 2576
2074 다시 한 해를 보내며 [1] 신종윤 2009.12.28 2579
2073 계산된 위험에 얼굴을 돌려라 [1] 문요한 2013.12.18 2579
2072 릴케에게 배우는 글쓰기 file 승완 2014.04.01 2584
2071 사랑이 노동으로 변해갈 때 박미옥 2014.10.17 2587
2070 마음을 모아서 보고 싶다 file 승완 2013.12.17 2594
2069 좀 더 용감하고 아름다운 삶 한 명석 2014.08.20 2599
2068 인문주의적인 어느 명절 이야기 [1] 연지원 2014.02.03 2604
2067 [화요편지] 가정경제의 아킬레스건, 좋은부모 컴플렉스 file 아난다 2020.06.23 2607
2066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김용규 2014.12.25 2609
2065 모든 여행은 비밀의 목적지를 품고 있는 법이다 [6] 박미옥 2014.01.17 2610
2064 우리시대의 사막 -창- 2014.05.31 2610
2063 상황이 사실을 덮지 못하도록 [5] 신종윤 2010.05.17 2613
2062 그 중에 제일은 기쁨이라 문요한 2013.09.04 2617
2061 올해 어버이날은 함께하는 시간으로! 연지원 2014.05.12 2617
2060 집안일 3종 세트와 맞바꾼 것 연지원 2014.08.11 2618
2059 한 가닥의 희망 어니언 2014.05.24 2620
2058 경제학적 관점으로 본 인간의 욕망 차칸양(양재우) 2014.11.11 2621
2057 내게 딱 맞는 관계밀도 [1] 한 명석 2014.09.10 2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