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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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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5일 07시 51분 등록

15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았습니다. 15년이라니 정말 시간이지요? 남편과 저는 정말 오가다 만난 사이였습니다. 신촌에 위치한 대학에서 있었던 전시회에서 업계 동료로 만나 어쩌다 보니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혼까지 하게 되었네요. 우리 부부는 성격도 자란 환경도 많이 다릅니다. 저는 부모에게 학비에 생활비까지 받으며 편하게 공부하고 방학 때면 아르바이트해서 배낭여행을 갔지만, 남편은 방학 때면 아파트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분당에 있는 아파트촌을 지날 때면 '저거 내가 지은 거야'라며 자랑합니다.) 저는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안달복달하는 성격이지만 남편은 항상 느긋하고 낙천적입니다. 서로 많이 달랐기에 끌렸나 봅니다.  

 

사위에 대한 기대가 컸던 친정 아버지는 저의 결혼을 많이 반대하셨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야속했는데 딸을 키우다 보니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고생할까봐 노심초사하는 부모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버지가 결혼을 허락해주실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겁니다. 너무 어리고 성급해 아버지 마음을 많아 아프게 해드린 것이 후회가 됩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결혼생활 내내 저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너희들이 자전거에 무거운 짐을 싣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간다면 내가 뒤를 밀어주겠다' 결혼 승낙하실 때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셨습니다. 

 

15 간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둘이 시작했는데 예쁜 딸을 둘이나 낳아 식구가 되었고 17 전세아파트에서 시작한 살림이 불어 아늑한 집을 장만했습니다. 하지만 힘겨운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시댁의 우환으로 마음 고생을 하기도 했고 제가 건강이 나빠져 쉬어야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삶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한결같고 무던한 남편 덕입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저는 17 직장생활을 이어갈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1 기업가로 활동할 있는 것도 남편의 열렬한 응원(?) 덕분입니다.  

 

오늘은 남편과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와인잔을 기울이며 지난 이야기를 도란도란 해야겠습니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들에 대한 계획도 세워보구요. 그대도 결혼기념일이 있으신가요? 그대에게 부부는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을 울린 문정희 시인의 '부부'라는 시를 띄워 드립니다. 시를 읽으며 저는 남편과 거미줄이든 쇠사슬이든 오래오래 묶여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추석입니다. 부부간의 전우애를 발휘해 추석 명절 무사히 넘기시길 바랍니다. 

 

부부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에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없는 

백년이 지나도 남은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되는 과정과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보는 사이이다

 

서로에게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부란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오도 가도 못한

없는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알림] 1 기업가 재키가 결혼 14주년 기념시가 궁금하다면 클릭! http://blog.naver.com/jackieyou/220130310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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