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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로 머리를 감으매 이젠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돋습니다. 참 신기하죠. 계절은 여지없이 돌아올 시기에 이처럼 문을 두드립니다. 똑똑. 물론 묻지는 않습니다. 자연이란 현상이 그러하듯이 가고 오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어르신 분들이 얘기하는 순리라는 법칙을 아직은 제대로 이해할 나이는 되지 않았지만, 주변 환경을 통해 조금은 감지하는 그날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 그러한가요. 고민거리가 쉽게 머리에서 풀리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들. 그 고민과 생각은 결국 실천적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뿐입니다.
지하철안의 승객들. 눈빛들이 매섭습니다. 서늘함. 빡빡한 현실에 벌어질 일상을 미리 준비하는 것일까요. 헉헉. 오늘따라 계단 오름이 가파릅니다. 멀리 출구가 보이기 시작하네요. 두 갈래. 어느 길을 선택할까요. 평소에는 오른쪽 방향으로 향합니다. 동선이 상대적으로 짧기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이죠. 하지만 이따금 반대편 쪽을 나아가기도합니다. 조금 둘러감에도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바깥 풍경은 서울 대도시의 분위기가 제대 롭니다. 자동차 경적, 호객행위, 유흥 상가들, 아스팔트를 밟는 직장인들의 구두 발자국. 그리고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가는 행렬들. 어깨를 부딪치고 발을 밟아도 쳐다보기만 할뿐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반대편.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이효석님의 <낙엽을 태우면서> 운치처럼 인적이 드문 가운데 한적함의 가을 분위기가 묻어납니다. 달력의 바뀜은 나무로부터 먼저 찾아오나요. 겨울을 대비하여 이파리의 색이 바뀌기 시작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한 땅으로 내려오는 이가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순환의 역사라는 것은. 덕분에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무엇을 그리도 움켜잡고 있는지요. 추락하는 두려움일까요. 박차고 일어서지 못하는 용기 없음일까요.
초등학교 등굣길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정신을 들게 합니다. 어른들과는 다른 모습들. 한가로운 하늘의 푸름과 좌우로 늘어선 녹색 군무가 일렬로 위치해 반깁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입니다.
청주란 도시 진입로에 들어서면 플라타너스가 길게 늘어서 있어 초록색깔의 향연이 빛을 발하는데 이곳도 못지않습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번잡함속에서 이런 광경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는 행운입니다.
야외에 나온 아이마냥 발걸음이 가볍고 콧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녹색의 원천이 뜨거운 태양을 가리고 그림자를 드리워 깊은 숲속 산길을 걷는듯합니다. 산에 오르는 등산객마냥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봅니다. 야호도 한번 외쳐볼까요. 소음이 도심에 묻히지 않고 오솔길로 향합니다.
오늘 어떤 걸음을 걷게 될까요. 반복되는 하루 속에 지금처럼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내딛길 기원해봅니다.
오 분 남짓 짧은 소풍이후 기다리는 건 세상으로 이어지는 파란 신호등과 횡단보도. 잠시의 자연인에서 다시 샐러리맨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건넙니다. 빌딩너머의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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