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131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잠시 기쁜 상상을 해볼까요? 그대 아버지는 많은 것을 이루어낸 분입니다. 다양한 사업부문이 한국의 기업순위 상위를 차지하는 재벌기업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중에 호텔도 있습니다. 다른 부문 다 빼고 호텔 영역 하나만 가지고 상상을 좁혀 봅시다. 전국에 한 열 개쯤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는 호텔이 있는데 늘 성황이라고 상상해 보는 겁니다. 그렇게 사업을 일으켜 놓으신 아버지가 연로하고 쇠약해지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일선에서 이끄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대 형제자매는 모여앉아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전통적 문화를 따라 맏형이 그대에게 말했습니다. ‘동생아, 동생은 열 개 호텔 중에 서울에서 가장 멀지만 가장 아름다운 섬에 있는 호텔 하나를 맡아 운영하는 것으로 상속을 정리하자. 나머지 아홉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내가 잘 키워가마.’ 만약 그대가 이 집안의 동생이라면 이런 정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내가 한 열 명쯤에게 똑같이 물어보았더니 그중 한 명 정도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더 달라고 요구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공평하지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공평하지 않은 배분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자기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이 논의 자체가 이미 그릇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왜 아버지가 이룬 것을 꼭 자식들이 나눠서 운영해야 하는 것인가요? 내가 이룬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애초 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멋진 사람 아닐까요? 그 멋진 사람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조직 안팎에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아버지의 성과를 더욱 잘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승계를 개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공평에 대한 자기 정의가 빈약해서 불행해 집니다. 얼마를 가지면 공평할 수 있을까요? 타자와 나 사이에 대한 비율의 공평성으로 돈의 기준을 삼지 않고 진짜 내 필요와 열망을 돈에 대한 기준으로 삼으면 호텔의 방 열 개에 대한 운영권만 준다고 해도 나는 황송할 것 같습니다.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은 가까운 친구들과 존경하는 사람들을 그 객실로 초대해 인심을 나누며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유년 시절에 나의 또래 대부분의 집은 참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가장 따뜻했던 시절이었음을 이제 압니다. 개인사도 가족사도 인류사도 돈이 모자라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돈을 가지고 무엇을 채우고, 그 돈을 가지고 어디에 닿고 싶은지를 생각하지 않아 불행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36 | 직면의 시간 | 김용규 | 2014.03.13 | 2669 |
2035 | 주말을 보내는 또 하나의 방법 [12] | 신종윤 | 2009.09.14 | 2670 |
2034 | 삶은 대화를 통해 진화한다 | 문요한 | 2013.11.20 | 2670 |
2033 | 사람이라는 책 | -창- | 2014.06.28 | 2670 |
2032 | 유미주의자로 산다는 것 | 연지원 | 2015.03.23 | 2670 |
2031 | 당신의 지도는 [10] | -창- | 2013.09.21 | 2674 |
2030 | 직장이라는 수련원 | 書元 | 2014.02.15 | 2674 |
2029 | 그대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1] | 승완 | 2013.12.24 | 2675 |
2028 | 내가 가진 단 하나 | 한 명석 | 2014.03.21 | 2676 |
2027 | 돈 말고 생명 [12] | 김용규 | 2010.12.02 | 2677 |
2026 | 비타민 S 결핍증 [1] | 문요한 | 2014.01.08 | 2677 |
2025 | 꼭짓점을 찾아 삼각형을 만들어보라 [1] | 문요한 | 2010.12.15 | 2679 |
2024 | 안이 아니라 밖을 보라 | 문요한 | 2014.04.16 | 2681 |
2023 | 궁극적 진보로 나아가는 길 [1] | 문요한 | 2009.11.11 | 2682 |
2022 | 신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준다 [2] | 승완 | 2010.03.09 | 2685 |
2021 | 그건 진정한 것일까요 [1] | -창- | 2013.12.14 | 2686 |
2020 | 소용없는 것의 소용에 대하여 [1] | 김용규 | 2010.07.01 | 2691 |
2019 | [변화경영연구소] [월요편지 38] 수능만점 서울대생, 내가 그들에게 배운 한가지 [1] | 습관의 완성 | 2020.12.13 | 2691 |
2018 | 하쿠나 마타타 #2 [4] | 신종윤 | 2009.09.28 | 2692 |
2017 | 불감(不感)과 공감(共感) [10] | 김용규 | 2010.01.21 | 26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