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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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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8일 08시 02분 등록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저자는 1969년생 부장판사이며, 수능고사의 전신 학력고사에서 인문계 전국 수석을 차지한 수재이다. 어릴 때부터 온갖 책을 읽어대는 책벌레로 읽을 거리가 없이 화장실에 앉으면 불안해서 벽에 붙은 찢어진 신문지라도 읽어대는 활자중독이었다. ‘유체이탈하여 자신을 관찰하는 증세가 선천적으로 극심하여 자기 안에서 온갖 이기심을 확인하는 관계로, 사람에 대해 이렇다할 기대가 없으므로 극심한 절망 또한 하지 않는다.

 

프롤로그 첫 줄부터 그다지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자신이 대단한 휴머니스트가 아니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자임을 선언하고 있지만, 이 책은 온통 사람들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직업상 접하게 되는 사건 속의 사람들은 가슴 아플 정도로 리얼하고, 동료들의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며, 말 깨나 한다는 정치권이나 식자층처럼 불특정 다수를 겨냥할 때조차 앞뒤가 똑 떨어지게 명료하여,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온 것 같다. 그 정도로 글이 생생하고 주장이 분명한 것은 저자의 생각이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방대한 독서량과 냉철한 분석력, 직업적인 연륜이 쌓여 그는 어떤 현상에든 할 말을 갖추고 있다. 그는 아마도 교육문제나 좌우 편가르기, 수직적 가치관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현안은 물론 세월호 사건처럼 급작스러운 사고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정리해 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유형일 수도 있다. 그것이 전형적인 지식인의 자세겠지만, 고도로 훈련된 논리와 지식으로 뒷받침된 후에 단단한 소신으로 정렬되고 문학적 재능으로 표출된 글 한 편 한 편이 고마울 정도이다. 서울법대와 부장판사로 지칭되는 사회지도층이 이만한 식견과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나는 감격스럽다.

 

까칠한 고백으로 시작했지만 그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건 아마 문학의 섭렵에서 왔을 것이다. 성실하게 일하는 알바생이 백화점 주차장에서 갑질하는 고객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거나, 세월호 사건에 대해 거듭 가슴아픈 언급을 하다가 결국 그 이야기로 책을 끝내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가 말하는 개인주의가 고립주의나 이기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에 앞서 수호되어야 할 1인분의 영역(고유함, 재량권, 사생활, 자유, 나아가 존엄성)을 뜻함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내가 우리 사회가 운용되는 상황에 걱정이 많았나 보다. 그렇기에 매사에 명쾌하고 반듯한 그의 글이 너무 통쾌하고 재미있었다. 법관으로 일하다보니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그다지 인과관계나 선악 구분이 명확하지 않더라며, 그래서 냉정한 신문기사나 주장이 뚜렷한 자기계발서보다 주관적이고 모호한 문학이 실제 인간사에 더 근접하다는 대목은 설득력이 있다(문학의 힘). 영화 머니볼을 원칙으로 하여 자신의 업무인 조정위원단을 구성하고는, 영화 어벤저스포스터를 띄워 동료들에게 ppt할 때는 멋있다(‘머니볼로 구성한 어벤저스 군단). 북유럽 국가의 특징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북유럽 열풍을 지긋이 찔러줄 때는, 역시 공부는 하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지상천국은 존재하는가).

 

바라건대 우리 모두가 그처럼 나의 취향을 명확히 알고 스스로 행복하며,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명확한 의견을 갖고 있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있는 개인주의자가 되기를! 상찬이 좀 길었다. 오랜만에 명석한 사회비평서를 읽고 너무 기분이 좋았던 탓이다. 서점에서 책을 뒤적일 때 너무 잘난 인간이라 책을 안 사줄까 하다가 그의 매력에 굴복하여 사고 말았다. 저자로서나 직업인으로서나 사회지도층으로서나 그는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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