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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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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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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9일 19시 10분 등록

 

돌아가신 스승님의 오랜 벗이자 형이 어제 백오산방을 다시 다녀가셨습니다. 스승님의 어느 책에 종욱이 형으로 등장하는 안 선생님이십니다. 교직에서 정년 퇴임 하신 뒤에는 계절에 한 번씩 이상은 찾아주십니다. 참 좋습니다.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늘 술과 함께 늦도록 그분과의 기억을 나눕니다. 하지만 어제는 밤 11시까지 강행한 강연 때문에 제대로 말벗이 돼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하필 두 번, 총 여덟 시간 가까운 강연을 한 탓에 피로가 쌓여 대접도 소홀했습니다. 송구했으나 어쩌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이 좋아했던 시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스승님께 여쭙지 못한 질문이 있습니다. 스승님은 입버릇처럼 시처럼 살고 싶다하셨는데, 저는 스승님께 시처럼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것인지여쭙지 못했습니다. 왜 그 뜻을 여쭙지 못했을까요?” 스승님 세상을 떠나시고 여쭐 곳 많지 않아지면서 이제 나는 길에서 더 많은 것을 여쭙니다. 스승님이 왜 여행을 그토록 좋아하셨는지 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에 강연을 가면 꼭 추사를 만나고 이중섭을 만납니다. 벌교에 가면 스승님과 함께 했던 거리를 걷고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조정래 선생님의 품을 마주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합니다. 여행을 통해 나를 만나고 깊고 향기로운 인간의 길을 탐험하는 시간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새삼 시를 더 자주 읽게 되었으면서도 나는 아직 스승님이 시처럼 살고 싶다하셨던 말씀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은 시인으로 살고 싶다가 아니라 시처럼 살고 싶다하셨습니다. 나는 시인을 연꽃과도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 끔찍한 부유물 천지의 세상에서 그 고운 꽃을 피워내는 기적이 시인에게는 있다 여기는 사람입니다. 나는 또한 시인을 소금쟁이같은 존재로 떠받드는 사람입니다. 고체 덩어리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바닷물에서 작고 단단하고 반짝이는 소금 알갱이를 만들어내는 위대함이 시인에게 있다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염전 그 뙤약볕에서 반짝이는 소금을 만들기 위해 소금같은 땀과 눈물을 삼키고 흘리는 일을 기꺼워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 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시인을 어떤 영웅보다도 존경합니다.

 

그런데 스승님은 시인이 아니라 시처럼 살고 싶다하셨습니다. 선생님 계셨을 때 왜 그 말을 미처 여쭙지 않았을까요? 후회가 됩니다. 이런 사심은 여우숲에서 매월 열리는 인문학공부모임 117일 모임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나는 스승님이 사랑했던 시인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언젠가 내가 진짜 내 삶을 살고자 결심해 놓고도 크고 작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스승님이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떨어지지 않고 강을 이룰 수 있는 폭포가 있더냐!” 이 말씀은 아마도 이번에 여우숲 공부모임에 초대하는 시인, 박남준 선생님의 시 나무, 폭포, 그리고 숲의 한 구절에서 차용해 오신 표현일 것입니다.

 

박남준 선생님은 그 시의 한 구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더군요.

구비구비 흘러온 길도 어느 한 구비에서 끝난다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버린다

다시 내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 꽂힐 수 있느냐 내리 꽂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며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그리하여 거기 은빛 비늘의 물고기 떼, 비바람을 몰고 오던 구름과 시린 별과 달과 크고 작은 돌이며 이끼들 산그늘마저 담아내는 것이냐

 

스승님 계시지 않으니 나는 스승님이 사랑했던 시인을 만나 짐작해 볼 작정입니다. 미처 여쭙지 못한 그 말의 뜻, ‘시처럼 산다는 것’. ‘시인의 눈과 시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고 그 눈과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으니까요. 그것으로 내 삶과 영혼을 더욱 따뜻하게 하고 싶으니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

117일 여우숲 인문학 공부모임 안내

* 주제: ‘삶을 일으켜 세우는 시

* 강연제목: ‘시인의 눈, 시인의 마음

* 강사: 박남준 시인

* 장소: 여우숲 숲학교 오래된미래 교실

* 시간: 2015. 11. 7() 14:30 ~ 17:30 강연, 뒤이어 식사 및 담소와 술과 1박과..

* 참가방법: 여우숲 홈페이지 해당 공지사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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