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2015년 10월 30일 08시 38분 등록

아버지가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셨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입을 빌어 재키의 가족상봉 후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금강산행 버스에 올랐어. 북한으로 들어가니 온통 산이 벌거숭이야. 나 어릴적 보던 산 같았어. 길에는 고등학생 같은 앳된 얼굴의 북한병사 몇몇이 보이더구나. 금강산은 웅장한 돌산이야. 돌병풍을 쳐놓은 것 같은 장관이었어. 남쪽 가족은 현대에서 지은 외금강호텔에, 북한 가족은 북에서 지은 금강산호텔에 묵으며 상봉을 준비했지. 우리 가족은 48번 테이블을 배정 받았어. 정해진 시간이 되자 북쪽 가족이 하나 둘 상봉장으로 들어서더구나.

 

작은아버지와 꼭 닮은 유봉열이랑 웃는 얼굴이 고운 유영옥이 나왔어. 내겐 사촌동생들이지. 작은 아버지가 아들을 셋, 딸을 둘 두셨는데 봉열이는 함경도에서 도라꾸(트럭) 운전사를 한대. 유숙렬이는 제철공장 기술자이고 유광열이는 제철공장 사무실에서 일한대. 영옥이 신랑은 탄광 막장장이고 영옥이는 집에서 가축 몇 마리 키우고 텃밭 일구며 소일한대. 맨 위에 있던 누나는 다섯 살 때 죽었다는구나. 영옥이는 아주 싹싹한 성격이야. 나한테 생글생글 웃으면서 '큰 오라버니, 약주 좀 하시라요'하면서 잘도 권해. 작은아버지는 2003년에 돌아가셨대. 생전에 가족들에게 '충북 청주 복대리에 가면 내 집이 있다. 통일이 되면 큰할아버지 유근창과 큰조카 유흥열을 꼭 찾아가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대. 명절이면 고향 생각이 나는지 더 자주 이야기하셨대. 

 

공개상봉이 끝나고 호텔방에서 만나 준비해간 선물을 전해줬어. 걔네들도 정로환이나 정관장 같은 거 다 알더라구. 시계 사용법도 알려주고 미화도 전해줬지. 네 할아버지가 "미화를 이것밖에 준비 못했다"하니가 영옥이가 "아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어버이께서 잘 해주셔서 우리 잘 먹고 잘 삽네다"하더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같았어. 우리는 북한 정부가 마련해준 술 3병과 손수건 3개를 봉열이한테 받았지. 네 할아버지가 "근호가 북한에 일가친척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지?" 하니까 봉열이가 "아넵니다. 아버지는 사교성도 좋고 부지런해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전쟁에서 옆구리에 파편이 박혀 병원생활을 2년 했디만 제대 후에 대학을 두 군데나 다녔습네다. 그리고 제철공장에서 일하다 오마니를 만났습네다. 외할마니가 개를 키웠는데 피 많이 흘린 사람은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아바디를 많이 챙기셨습네다". 아마 장가를 잘 가서 북에서 자리를 잘 잡으셨던 모양이야. 참 다행이지?

 

20년 넘었지. 테레비에서 이산가족 있으면 신청하라고 해서 했지. 그런데 감감무소식이야. 그 후에 네 큰삼촌이 또 신청을 했지. 10년 전 어느 날 네 할아버지한테 적십자사라며 전화가 왔대. 확실하지는 않지만 유근호씨가 북한에 살고 있는거 같다고. 그러곤 또 소식이 없다가 최근에 연락이 온거야. 이번에 상봉한 사람들은 다 아흔이 넘은 고령자였어.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 봉열이랑 영옥이도 알만 하니까 헤어져서 너무 아쉬웠어. 그래도 둘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아서 마음이 놓였어. 작은아버지가 북한에서 결혼도 잘 하고 잘 사셨던 것 같아 위안이 되더라구. 그리고 네 할아버지 말이다. 이번에 보니까 너무 야위었어. 계단 10개를 못올라 가시더구나. 네 삼촌이랑 나랑 옆에서 부축을 했는데 팔이 성냥개비같았어. 측은지심이 들어서 오늘 모시고 가서 한약 지어드렸다."

 

아버지는 이번 상봉에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사이도 좋지 않은데 며칠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이제 와서 북쪽 가족을 만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셨답니다. 그런데 이번 상봉을 통해 북쪽 가족뿐 아니라 아흔이 넘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는 이번 가족 상봉이 아버지의 남은 인생에 큰 영향을 줄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한 장면에 서 계셨던 아버지가 참 부럽습니다. 혹여 다음 상봉이 있다면 저도 꼭 데려가 달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함경도 봉열 당숙부댁에서 하룻밤 머물며 북한의 밤하늘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미소가 고운 영옥 당고모가 키운 채소는 고모를 닮아 달큼한 맛이 나겠지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래봅니다.

 

 

[알림] 1인 기업가 재키의 아버지와 북쪽 가족 얼굴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되었습니다. 궁금하다면 클릭! http://blog.naver.com/jackieyou

IP *.219.66.8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16 수양을 추구하는 사람들 연지원 2015.04.27 1801
2315 저유가, 셰일혁명 그리고 막장 미드(미국 드라마) file 차칸양(양재우) 2016.03.22 1801
2314 [용기충전소] 지금 여기에서 한달살이를 한다면 file [1] 김글리 2020.12.04 1804
2313 사람의 시대를 꿈꾸는 사람들 김용규 2015.04.30 1805
2312 <알로하의 영어로 쓰는 나의 이야기> 영어가 제일 싫다는 아이들 [2] 알로하 2021.06.13 1805
2311 [용기충전소]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고 있나요? [4] 김글리 2021.03.19 1809
2310 [용기충전소] 결핍은 삶의 이정표 [3] 김글리 2021.03.12 1810
2309 치킨집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2부) - '차칸' 프랜차이즈를 기대하며 file 차칸양(양재우) 2016.03.08 1811
2308 [월요편지 86] 사업하는 방법 5단계 [1] 습관의 완성 2021.12.19 1811
2307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이긴다 한 명석 2015.07.08 1812
2306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 한 명석 2015.05.20 1815
2305 맷집 김용규 2015.08.13 1817
2304 어떤 일도 재미없으면 가짜 file [1] 한 명석 2015.12.23 1819
2303 [화요편지]당신이라는 빛나는 '산책' [2] 아난다 2021.07.20 1820
2302 <알로하의 영어로 쓰는 나의 이야기> 끝나지 않는 나의 이야기(MeStory) 알로하 2022.01.16 1824
2301 명품이란 자본주의 게임의 경품이다 차칸양(양재우) 2015.08.04 1828
2300 ELS(주가연계증권) 투자자들의 한숨이 깊어가는 이유 file [4] 차칸양(양재우) 2016.02.16 1829
2299 글을 쓴다는 것 書元 2015.05.02 1830
2298 재능은 꽃피우는 것 [1] 어니언 2021.03.25 1840
2297 선생님의 2주기 즈음에 [4] 한 명석 2015.04.01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