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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00시 36분 등록

밀면. 6.25 전쟁 피난 시절 북한 지역 출신 실향민이 메밀 대신 밀가루를 이용 냉면 대용으로 먹으며 시작된 음식. 그 맛은 어떨까요. 부산 출장길. 원조로 이름난 곳을 찾아갔습니다. 전문 음식점이 그러하듯 오롯이 단일메뉴.

물 밀 면을 주문 후 받아듭니다. 소담스러운 외양. 겉보기에는 냉면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젓가락으로 가닥을 헤집습니다. 돌돌 말아 혓바닥에 올린 후 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첫맛의 알싸함과 끝자락 매달리는 달짝지근함이 달라붙습니다. 입맛이 다셔지는 향취. 이게 밀면 이라는 거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야 벽에 씌어놓은 그 역사적 태생 배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짠합니다. 당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와중, 그들은 밀로 만든 면을 들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이북 고향에 두고 온 형제자매 혹은 하루 풀칠의 걱정들이 아니었을지. 그들이 먹었던 의미성. 현재의 그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옆자리. 건설 일용직 차림의 어르신. 국물까지 말끔히 털어 넣은 후 바로 일어설 채비를 차립니다. 힘을 쓸려면 밥을 청해야 할 터인데.

“날씨가 찬데 힘들지 않으세요?”

오지랖 넓은 나의 질문에 찌푸린 미간 주름살 사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먹고 살려면 할 수 없죠.”

울컥.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괜한 빈 그릇이 미안해집니다. 매스컴 요리 식객처럼 맛집 향연을 왔건만, 어떤 이는 노동을 위한 오직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을 들고 있으니. 별미가 아닌 굶주림 해갈을 위한 오롯한 먹을거리. 그랬습니다. 어머니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반복되는 생업의 일과. 국수로 배를 채움에도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하루벌이 금액을 떼어 자식들이 좋아할 과일이며 간식을 사들고 오십니다. 만찬. 아닙니다. 힘겨운 삶 조금의 사치였습니다. 곁들여 이어지는 넋두리와 팔자의 한탄. 사는 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좁은 가슴은 뒤안길을 애써 보지 못한 양 하였습니다.


당신 삶의 고민이 익어갔을 그 나이의 시점. 살아간다는 무게감이 어느덧 똬리를 치고 냉큼 나가지를 않습니다. 서울 객지생활 이십여 년. 퇴근 후 술 한 잔 기울이노라면 또래의 중년들 고충이 쏟아집니다. 자식, 부모, 정년 그리고 퇴직이후의 갈림길. 어느덧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당면한 이 주제들은 단순히 사람의 하루벌이가 아닌 존재 근간을 지탱합니다. 두렵습니다. 그 명제에 저당 잡히며 살고 싶지는 않은데 현실이라는 발목이 조금씩 잡고 늘어집니다.


그날 그 한마디 말. 오늘.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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