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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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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3일 12시 31분 등록

 

1.

오전이면 이곳에 온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출근하는 카페다. 매번 앉게 되는 나의 자리에 몸을 얹고서 창밖을 내다본다. 커피향이 피어오르고 재즈가 들려오는 이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오전 일과를 시작하기 전 찰나의 시간이지만, 몰입할 줄 아는 이에게 찰나는 종종 영원이 된다. 현재가 아득해지고, 아득한 옛일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맛보는 날, 내 앞에 놓인 '하루'라는 작은 인생과 춤을 추고 싶어진다. 자기 인생과 춤을 추는 즐김은, 자기 인생과 맞붙어 싸우는 전투가 승화된, 최고의 자기경영이다. 전사들만이 진정한 춤꾼이 되리라.

 

2.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가 주말 사이에 앙상해졌다. 병든 병아리마냥 노오란 잎들이 많이도 떨어졌다. 힘이 없어 보이는 것도 나의 관점일 뿐, 나무는 결연하게 계절의 흐름을 따르는 중이다. 바람이 분다. 앙상해진 가지가 흔들린다. 힘 없는 흩날림이 아니라, 가을 나무가 펼치는 시의적절한 춤사위다. 새로운 계절에 걸맞는 털갈이를 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고유하고 상황에 맞춤한 변화를 타자의 시선으로 동정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쉬이 쓰러지지 않고, 영혼은 강인한 이들은 힘없이 주저앉지 않는다.

 

3.

은행나무가 선 곳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에서 불과 1m 떨어진 인도다. 문득 가로수의 삶이 궁금해진다. 저들은 어디로 뿌리를 내릴까. 조금만 내려가면 하수도관이 가로막을지도 모르는데. 청쾌한 피톤치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숲 속 맑은 공기를 마시면 좋을 텐데, 가로수의 운명은 얄궂다. 숨결마다 자동차 매연을 느껴야 할 테니까. 다시 은행나무를 쳐다본다. 바람이 잦아들어 가만히 매달린 은행잎을 본다. "나를 왜 이런 곳에 심어두었냐"는 투정과 불평이 어울리지 않는 자태다. 다시 바람이 분다. 은행나무는 또 춤을 춘다. 

 

4.

최고의 장인은 단번에 연장을 알아본다. 품격 있는 장인은, 자신의 기술이 발휘되어야 하는 순간에 연장의 부재나 상태를 탓하는 대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이자 최고를 빚어낸다. 내가 화가라면, 절경을 찾는 대신 어디서든 무엇이든 붓놀림을 연습하고, 끌림을 담아내리라. 내가 작가라면, 영감을 찾지 않고 어디서든 무엇이든 순간을 포착하고 영혼을 표현하리라. 어떤 글쟁이가 조용한 서재가 없어 글을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의 실력과 품성을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최고의 글쟁이 알랭 드 보통을 떠올릴지도.

 

25339F37565286412BDAEF히드로 공항에서 일하는 알랭 드 보통 (출처:『공항에서 일주일을』)

 

5.

나는 알랭 드 보통이 좋다. (그의 대머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히드로 공항 터미널 내 북적북적한 공간에 마련된 책상에서 글을 썼다. (위 사진 참조) 『공항에서 일주일을』이 그 결과물이다. 보통의 말을 적어 둔다. "사실 이곳은 일을 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오히려 그런 어려운 작업 환경이 글을 쓰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객관적으로 일하기 좋은 곳이 실제로도 좋은 곳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용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서재는 그 흠 하나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실패에 대한 공포를 압도적인 수준으로 높이곤 한다."(p.77)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은행나무는 또 다시 춤을 춘다. 자기 인생의 불운과 화해한 이들은 전투복을 벗고 춤복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현재에 몰입하는 이들은 춤을 추며 사는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은 몰입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함은 "나는 아직 몰입을 모릅니다" 라는 말과 매한가지다. 멋진 인생살이를 위해서는 어디에서나 몰입이 필요하다. 희소식 하나는 (잠시나마 스스로를 컨트롤 할 줄 아는 '자기수행자'가 되면) 언제나 몰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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