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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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못 쓰면 위험하다. 마음에 담기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니까. 대단한 글은 못 되지만 나름 쓰는 것이 일상인데 조금도 끄적거리지 않은 지 2주일이 되었다. 달력까지 확인해서 써 놓고 나니 별로 긴 기간이 아니라 엄살로 느껴지지만 문제는 <마음편지>다. 글을 못 쓰고 있을 때는 유독 일주일이 빠르다. 지난 일주일동안 한편의 글이 될 만한 상념도 없었다는 사실은 나를 위축되게 한다.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나는 삶과 글이 일치되어야 만족하는 사람이고, 그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약해진 것인지 받아들이는 마음밭이 둔탁해진 것인지 글감을 포획하지 못한다는 것은 위중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도 쓸 것이 없었다. 눈과 마음에 얻어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몸을 떨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쥐어짤 것인가, 다시 진솔한 마음이 우러날 때까지 밀어둘 것인가 한참을 고심하다 후자를 택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나는 오늘도 쓸 것이 없다. 그저께부터 <마음편지>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말라비틀어진 낙엽처럼 서걱거리는 마음에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었다. 일과가 달라진 것은 없다. 에너지의 원천이 외부의 자극에 있느냐, 나의 내면에 있느냐에 따라서 외향과 내향을 나눈다면 나는 울트라내향성인지라 혼자놀기에 능하고, 혼자 놀다보면 감흥으로 충만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 감흥이란 것이 예전의 절반 밖에 되지가 않는다. 그것이 선의의 아이디어든 충동구매든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 온전히 그 열기에 휩싸여 곧바로 저지르고, 결과가 어찌 되었든 “해 봤다”는 기쁨으로 희희낙락했었는데, 그 무모함이 사라진 것이다. “생각”이란 것의 순도가 약해져 감흥이 줄어들고, 행동으로 연결되는 빈도도 약해지니 기운을 생성할 통로가 없다.
그렇다! 나는 나이가 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나이에 연연한 적이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나”가 달라지고 있다면 이건 중대한 문제였다.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글을 쓰지 않는 대신 머리는 연신 바빴다. 전에 비해 스스로 믿고 저지르는 힘이 둔화되었다면, 그 일의 결과를 짚어보는 시간은 늘었다. 오직 “나”에게 집중되어 있던 관심이 주위 사람들에게로 넓혀지고 있다. 전에는 즉흥적일 정도로 순간의 만족을 추구했다면 이제 10년 후, 20년 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절감한다. 무엇보다도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어쩌다 직설적인 사람에 접하면 나도 저랬겠구나 싶어 얼굴이 뜨거워진다. 가끔 쓸쓸한 시간이 늘었지만 이건 인간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고독이다. 누군가 나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던 때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밖에 없었는데, 달라진 것이 없는데 감정을 과장할 이유가 없었다. 요컨대 나는 전에 비해 더 유연해지고 커졌으면 커졌지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인생이 길어져서 다행이다. 부족한 점, 잘 못 되었던 점을 고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의 선물을 수용하되, 직관과 씩씩함 같은 장점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의 시간은 갈수록 풍요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을 즐기지 못했다면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즉각 “교정”에 들어간다. 이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즉각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오직 게으름 밖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소박한 프리랜서인 내가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으면 일상이 무한정 늘어지는데, 언제까지 몇 권의 책을 읽고, 무슨 책을 쓰겠다는 목표라곤 없었으니 엿가락처럼 늘어진 일상을 쓸데없는 생각이 잠식해 버린 것이었다.
목표가 필요해! 우선 내년에 100권의 책을 읽어야지 싶다가 내년까지 기다릴 게 뭐 있어? 지금 당장 시작하면 일 년을 13개월로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부터 좀 더 신경 써서 책을 읽고 번호를 매겨 북리뷰를 올려야겠다. 아무 것도 키울 수 없을 것 같이 버석거리던 마음이 설렌다. 내 감정과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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