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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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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1일 16시 28분 등록

1.
“OOO은 인간 지식의 전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 영역에 익숙하고, 근본적인 개념과 쟁점, 가치를 이해할 뿐 아니라 모두가 바라는 약간의 지혜까지 갖추고 있다.” 모티머 애들러의 『평생공부 가이드』 서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문장입니다. 지식의 전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와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진 이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지적 배경이 다른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창의성을 자극할 테고요.

 

2.
『평생공부 가이드』의 원제는 ‘평생의 지적 추구를 위한 학습 가이드북(A Guidebook to Learning for a Lifelong Pursuit of Wisdom)’입니다. 매력적인 주제의 책입니다만 사람들에게 쉬이 권할 수는 없겠더군요. 최소한 세 가지의 이유 때문입니다. 인간 지식의 전 영역’을 공부하고 싶거나 지혜를 열망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1) 친절하게 사례를 들지 않기에 지루한 대목이 많고, 2) 학문의 분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3) 철학적 설명이나 추상적인 개념 설명이 복잡하게 보일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적 욕심이 가득한 이들에게만 권합니다. 특히 인문 소양을 탐하는 이들에겐 공부하듯이 읽으실 만한 책이라고 추천 드립니다.

 

3.
모티머 애들러는 우리나라에서 『독서의 기술』이라는 책이 번역되면서 독서법의 대가로 알려졌습니다만, 미국에선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의 전도사로 유명합니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이념을 추구하는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만들고, 『서양의 위대한 책들 The Great Books of Western World』라는 54권짜리 거대한 고전 선집을 엮었습니다. (훗날 60권 버전으로 업데이트되었고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장도 지냈던 인물입니다.

 

4.
『평생공부 가이드』는 교양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수월하게 읽힙니다. OOO에 해당되는 말도 교양교육을 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교양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양인이라는 말이 어떤 뉘앙스를 지니는지 궁금하네요.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매너 좋은 사람이라는 어감도 있고, '교양'은 지식이나 문화적 소양을 뽐낸다는 어감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1986년에 출간된 『평생공부 가이드』가 2014년에야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이런 오해 때문이거나 ‘교양교육’에 대한 독서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상합니다.

 

5.
모티머 애들러가 말하는 교양인이란, 파이데이아를 공부하며 지혜로워져 가는 사람입니다. ‘파이데이아(paideia)’는 그리스어인데, ‘종합적 학식’을 뜻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지칭하는 ‘에피스테메’와 대조되는 말이고요. 애들러는 파이데이아를 다음과 같이 쉬운 말로 설명합니다. “청년기에 학교 교육을 끝마친 이후 성년기에 스스로 공부해서 교양을 두루 함양한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들의 종합적 공부를 위한 길잡이.”(p.201)

 

 6.
『평생공부 가이드』 읽기는 결국 세 가지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1) 파편적이고 병렬적인 지식이 지혜와는 얼마나 무관한가. 애들러는 알파벳주의와 백과사전식 지식의 나열을 비판합니다. 2) 파이데이아를 공부해야 한다는 애들러의 주장. 여러 학문의 갈래를 이해하고 통합하는 '종합적 학식(파이데이아)'만이 고차원적인 정신의 자산인 이해, 지혜, 기예를 획득하게 됩니다. 3) 파이데이아의 구체적인 목록은 무엇인가. 애들러는 ‘파이데이아’의 골자를 부록에 소개합니다만, 아쉽게도 이 책만으로는 파이데이아를 갖출 수는 없습니다. 아래처럼 목차만 나와 있으니까요.

 

제1부 물질과 에너지

제1장 원자 : 원자핵과 원소
111. 원자의 구조와 성질
112. 원자핵과 원소

 

제6부 예술

제1장 예술일반
611. 예술의 이론과 분류
612. 예술품 경험과 비평, 예술의 비심미적 맥락
613. 특정 문화에서 예술의 특성

 

7.
이 책은 어떤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학문의 주요 골자를 이해하고 종합적 판단력을 갖추고 싶은 분들, 파편적 지식을 구조화할 수 있는 지적 얼개를 세우고 싶은 분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지는 비결이 공부에 있다고 믿는 분들이라면, 평생학습을 추구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공부의 큰 방향성을 세우도록 돕는 첫길내기의 책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도움이 안 될까요? 구체적인 독서의 기술을 찾는 분들, 단기간에 학습의 효과를 얻고 싶은 분들 그리고 인간, 사회, 자연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일에 관심 없는 분들께는 애들러의 말들이 사변적이고 관념적으로 보일 겁니다.

 

남녀 간에도, 우정 관계에도, 책과 독자 간에도 궁합이 맞아야 만남이 즐거워집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나는 7번을 말하려고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함께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진지하게 공부할 이들을 찾는 중일 테고요.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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