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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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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3일 01시 04분 등록

두려움이란 마주하는 상황을 겪기 이전 및 이후 기억에 잠재된 경험의 걱정치 징후를 말함입니다.

떠났습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무작정 제주도로. 정해놓은 행선지는 없습니다. 무엇을 하러 가는 걸까요. 내 대답은 그냥이었습니다. 같은 육지임에도 그렇지 않은 듯, 같은 사람 사는 동네이지만 그렇지 않은 듯 그곳으로.


혼자만의 여행. 마음이 올레 길로 향하게 합니다. 코스 선택 및 이동 표식 인식,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등 여러 두려움이 앞섭니다. 낯설고 가보지 않은 길. 앞으로 현실이 될 미래입니다. 용기 있게 나섭니다.


바다와 어우러진 절경들. 오길 잘했네요. 얼굴이 환해 옵니다. 해안 산책로를 지나자 헉헉대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오름을 오르고, 끝없는 계단이 숨을 바삐 헐떡이게 합니다. 울퉁불퉁 발을 디디기도 힘든 자갈밭과 매서운 겨울바람 해변도 곁들여집니다. 걷는 것은 온전한 자신의 힘으로 해나가야 하는 행위. 짊어진 각자의 짐을 믿을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나갑니다.

무릎 관절이 시원찮은 터인데 오른쪽 종아리 부근 부담의 신호가 전해옵니다. 평상시 운동부족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지친 다리를 붙잡고 힘들게 목적지 도착. 뿌듯함이 있지만 절뚝거리는 아픔의 흔적이 남겨집니다. 첫 경험. 끝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습니다. 4인1실. 객들이 아래층을 차지한 방 널린 줄에는 양말 및 빨랫감들이 그동안 흔적을 말해줍니다.

이층침대. 움직일 때마다 삐걱 이는 소리가 울려 쉽게 잠이 들지 못합니다. 웬 사서고생. 배시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고3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는 학생들. 장기간 일정으로 올레길 종주를 하고 있답니다. 부끄럽습니다. 난 그 나이에 무엇을 했었던 지요.

“의약품 가진 것 있니?”

“없는데요.”

바셀린이라도 빌릴까했는데 괜히 어색해집니다.

“다니면서 아플 때는 어떻게 하고.”

“목욕탕에 있다 나오면 괜찮아요.”

부럽습니다. 그들의 청춘이.


토스트 한 조각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전날과는 달리 새로운 오늘은 기분 좋은 봄소식이 반깁니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름 모를 꽃들에 꽂혀 사진에 담습니다. 지인 분들과 공유하면 좋아하겠지요.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 삼매경에 잠기다보니 진리 하나를 깨닫습니다. 어제와는 다른 하루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시 씩씩히 일상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바다 가운데 해의 차오름. 고맙습니다. 오늘도 환하게 비추어 주소소. 동일한 대상이건만 서울 도심 빌딩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환경의 다름이기도 하겠지만 중요한건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의 차이이겠지요.

넘치는 여운으로 다리에 힘을 싣습니다. 잘 부탁해요. 차량으로 다닐 때와는 다른 속살 풍경 호사에 연신 입이 벙긋거려집니다. 감상과 여유에 흠뻑. 참 좋습니다.

이번에는 왼쪽 발목에 통증이 찾아옵니다. 삔 것도 아닌데 근육에 무리가 갔나요. 신경이 쓰여 주물러도 보지만 아픔은 가시지 않습니다.


걷기는 사람을 단순하게 침묵 속에 잠기게 합니다. 또한 여러 형태의 길을 통해 펼쳐질 인생의 장을 앞서 배워 나가게도 합니다. 오롯이 걷는 것. 자신의 걸음에 주목합니다. 거기에 통증의 지속은 생각을 길게 할 겨를을 없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이란 녀석은 복잡함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게 하네요.

가다 서다의 반복. 멈추어야하나요. 끝까지 가야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속 화자들처럼 머릿속 갈등이 맴돕니다.


‘그만두면 지는 거야. 앞으로 더욱 힘든 일이 있을 텐데 이거 하나도 완주 못하면 어떡하려고.’

‘아니야. 이번이 다가 아니잖아. 무리해서 괜히 안 좋아지면 어떡할래. 내일도 생각해야지.’


아쉽습니다. 조금만 가면 되는데. 어느 이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올레 길을 어떤 이들은 하루 두 코스를 다녔다는 등 자랑을 하지만 그렇게 걸을 거면 왜 여기 왔는지?’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스스로 세운 의지나 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는 편입니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뭐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뿌듯함, 자신감, 만족감. 그런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코스 시작점마다 두 조형물이 놓여있습니다. 출발과 행선지를 알리는 표지 석과 제주 올레 상징인 조랑말의 이름인 파란 색깔의 간세. 이는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의 ‘간세다리’에서 따온 것으로 천천히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를 즐기라는 의미입니다.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길 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봅니다. 포구, 방파제, 갈매기, 파란색 하늘. 4km가 남았다는 간세 문구가 아쉬운 마음을 안기지만 돌아서기로 했습니다. 걸음을 접고 후자 쪽 늑대에게 금번 먹이를 주었습니다.

억지로 했을 시 성취감은 있겠지만 이젠 그런 나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남은 여정도 대비해야 합니다. 금번 기회가 전부는 아니니까요.

소주 한잔에 까만 밤을 하얗게 새우던 체력 좋은 그때가 아닙니다. 올레길 참의미처럼 조금은 쉬고 다독여가며 여러 날들과 또 다른 인연들을 함께해야하는 시간입니다. 젊음이 돋보기와 같이 뜨겁게 세상을 불태우는 것이라면 이제는 망원경으로 호흡을 좀 더 멀리 조망해야 합니다. <홀로 아리랑>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가다가 힘들면 쉬어서 갑시다. 이도 힘들면 이제는 손잡고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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