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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6일 07시 39분 등록

최근 종영한 TV 프로그램 <응답하라 1988>.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까닭중 하나는 그 시절 그때 따뜻한 기억들을 다시금 만나고 회상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마다의 가슴속 남아있는 추억이라는 영상의 복원. 

 

성당 결혼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경건한 분위기속 선남, 선녀의 동반입장. 동장군도 아름다운 신부에게는 기세가 미치지 못해 보입니다. 당당함, 넘치는 웃음, 하얀 치아. 그녀에게서 그가 떠올려집니다.


사십대 초반. 굶주려 있었습니다. 영혼의 갈증을 채워줄 그 무언가를 기원하며. 후배 권유에 의해 읽게 된 책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허기진 마음 요란한 소낙비가 내립니다. 꿈 하나가 새겨졌습니다. 나도 책을 내어보리라. 저자가 운영한다는 연구원 제도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첫 번째 실패에 이어 다음해 두 번째 도전. 개인사와 2차 레이스를 통과한 후 3차 면접 테스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나 인사를 드리니 시린 손을 두툼한 무게로 감싸 안아줍니다.

“네가 승호구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렇게 마음을 울리게 할 줄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처럼 가슴 설레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느릿한 저음 톤의 음색. 닫혀있던 빗장을 열게 합니다. 첫사랑의 연인을 만난 것처럼 나의 가슴에 돌 하나가 던져졌습니다. 선한 인상, 잘생긴 코, 넓은 이마. 어린 시절 교과서 내용 중 큰 바위 얼굴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게 뇌리에 박혔습니다. 떨렸습니다. 앞으로 오랜 시간 나의 사부가 되어줄 구본형이라는 이. 이것이 그와의 첫 대면이었습니다.


길을 걸었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 질문을 합니다.

“연구원에 지원하려고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본인 출장이 잦은데 수업과 과제를 할 수 있을는지.”

대답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만약 이번에 되지 않으면 내년에 또 도전할거라고. 아마도 그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절실했었습니다. 직장생활, 40대 미래. 별로 신통한 게 없었기에 책이라는 동아줄에 매달리고 싶었습니다.

주마다의 버거운 책읽기와 밤을 새야하는 과제들. 한 달에 한번 새벽까지 이어지는 오프수업. 너무 힘이 들어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끝까지 가게해주소서.


개인별 어떤 책을 쓸 것인지 발표하는 시간. 주제 선정의 모호함에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에게 당신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 떨려왔던 여운처럼.

“하루 중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누구지?”

“아줌마들입니다.”

현장 영업 세일즈를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럼 그분들 대상으로 글을 써봐.”

“???”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명제. 파랑새는 가까이 있었습니다.

“첫 책은 쓰고 싶은 것을 쓰기보다 쓸 수 있는 것을 써라.”

그렇습니다. 내가 가장 쉽게 만나고 자신 있게 대할 수 있는 소재. 여성, 아주머니. 사부는 덧붙입니다.

“그러다보면 아줌마 경영전문가도 될 수 있을 터이고.”

터널속의 어둠이 갑자기 밝음으로 환해집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할 수 있겠다는 느낌. 말씀대로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몇 년의 시행착오 끝에 책의 출간. 바랬던 만큼 삶이 변화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자신감이란 선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육사가 <광야>에서 초인을 기다렸듯 나에게는 그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인연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갑작스런 암이란 질병 선고로 그는 그렇게 세상과의 짧은 시절을 정리합니다. 투병생활중임에도 책에 남겨질 추천사를 받기위한 이기적 욕심에 부득불 당신 집을 찾아갔었지요. 추위에 실내에서도 털모자를 쓰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맞아준 그. 고통의 속내를 참느라 핼쑥해진 얼굴임에도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떠나보내는 날. 혈육도 아니건만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 장례식 때에도 흘리지 않았을 눈물을 당신의 마지막에 쏟아내었습니다. 나를 뽑아준 사람. 가능성을 일깨워준 사람. 모든 것이 그렇듯 뒤늦게 아쉬웠습니다. 개인적 식사 대접 약속을 지키지도 못한 채 영원할 것 같았던 그가 봄날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인상 좋아 보이는 신랑과 생전 사부를 꼭 빼닮은 신부. 제2의 출발선상에 앞서 주례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인용합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랬네요. 아직 자신이란 존재를 몰랐던 나를 그가 이렇게 불러주었습니다.

“네가 승호구나.”

한파주의보가 몰아친 날. 그리운 이를 다시 만나 이름을 되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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