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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6년 3월 18일 08시 42분 등록

저에게 열변을 토하는 그의 눈동자가 툭하고 떨어질 것 같습니다. 검은 눈동자가 점점 작아져 슝하고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는 이리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왜 그 책을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신의 프로필이 그 책을 써야하는 당위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책 세 권이 팔리지 않은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책을 써야 좋을지는 모르겠다.' 

 

가슴 속에서 불길이 화악 올라왔습니다. '이 사람 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럼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아니면 커리어에 대한 책을 내면 안된다는 거야? 조직에서 17년을 일했고 별은 달지 못했지만 커리어 컨설턴트로 헤드헌터로 살면서 많은 직장인들을 만났는데 나에게 그런 자격이 없다니 말이 돼? 거기다 대안없는 비판만 하다니! '네가 하려는 건 아니야, 그런데 뭘 하면 좋을지는 모르겠어'라고 하는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마음이 복잡합니다. 젖은 솜뭉치처럼 몸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얼마 전 만난 그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커리어와 관련된 책은 유명인이 아니면 잘 팔리지 않는다. 무명의 작가라면 남들이 쓰지 않는 섹시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저는 회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 직장인들을 돕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요구사항이 많은 남성 보스에게 눌리고 말 안듣는 팀원들에게 치여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는 여성팀장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편집자가 '네가 그 책을 써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 역시 여성팀장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중도포기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섬광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여성팀장 개인에게 해결책을 제안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조직에게 여성팀장의 효과적인 성장과 활용방법을 제시하는 경영서를 써보면 어떨까?' 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조직의 시스템을 바꾸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죠. 압니다.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편집자도 있을 겁니다. '네가 뭔데 경영서를 쓴다는거야? 넌 경영대학교 교수도 아니고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도 아니잖아?'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책의 내용으로 말해야죠. 이번 책은 다양한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을 활용해 과학적(!)으로 쓸 생각입니다. 설문조사도 하고 기업의 사례분석도 해야죠. 아, 한 가지 더요. 저의 네번째 책이 나올 즈음 저는 경영대학원에서 리더십과 코칭 분야의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이 그들을 설득할 무기가 될지는 모르지만요.  

 

지난 몇주간 마음이 상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기대가 꺾이는 일도 있었고 말도 안되는 비난을 들은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괴롭지만 수긍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니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좋은 책을 쓰려고 더 노력할 것입니다. 그 때 만났던 그와 그녀가 '아차차! 내가 정말 괜찮은 작가를 놓쳤구나'하며 후회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어줄 것입니다. 복수의 칼을 가는 재키를 응원해주세요. 그대도 복수의 칼을 가는 뭔가가 있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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