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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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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5일 00시 14분 등록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새 책의 제목이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출판사 담당자 전언으로는 오늘 책이 물류 창고에 입고됐고 저자에게 증정하는 소량의 책을 발송했다고 합니다. 빠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 책을 받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나는 이번에 책의 제목과 디자인, 저자를 소개하는 글, 장정 등에 대해 출판사가 제시한 안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몇 권 책을 내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저자로서 의견을 세워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아예 입을 닫았습니다.

 

제목이나 나를 소개하는 글에 대해 미세한 조정을 하고 싶었지만 모른 척 참은 것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제 책에도 팔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표지 디자인을 놓고는 한참 동안 망설였습니다. 네 개의 시안은 크게 두 갈래의 컨셉을 둘로 변주한 디자인이었는데, 하나의 컨셉은 느티나무나 팽나무로 보이는 거목의 실루엣을 크게 확대하고 적당히 잘라서 만든 선명한 디자인이었습니다. 다른 하나의 컨셉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가지 끝부분만을 담은 사진에 그곳으로 날아드는 새 한 마리를 표현한 여백이 가득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디자인은 뭐랄까, 흔들리고 있는 숲, 규정하기 어려운 신비와 역동이 포함된 느낌이었습니다. 출판사는 후자의 디자인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내 의견을 물었습니다. 나는 이 디자인에 대해서도 역시 이견을 제출하지 않았고, 책의 표지 디자인은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사실 최종 결정된 그 디자인을 내심 좋아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의 독자들에게는 채택하지 않은 그 선명한 디자인이 더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시대의 우리는 선명한 것에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출판사가 채택한 그 표지 디자인이 이번 책 속에 저장된 내 삶의 흔적과 사유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속에 기록한 나의 삶과 마음과 사유를 잘 표현한 디자인에 마음이 확 끌린 것이지요.

 

돌아보면 나는 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판단과 행동 속에는 비교적 시()와 비()가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늘 단호했습니다. 당연히 공()과 사() 역시 분명했습니다. 어떤 결정과 판단에 대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서운해 하리만치 나는 시비와 공사를 엄격히 구획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정의와 불의를 구획했고, 목표와 수단을 분명히 구별하여 도달해야 할 지점과 그 지점을 향해 조달하거나 거쳐 가거나 활용해야 할 것들을 선택하고 에너지를 나누는 편이었습니다. 내가 자연으로 삶의 거처를 단호하게 옮겨내고 때로 비틀대고 홀로 울부짖는 날을 겪으면서도 10년의 세월을 주저앉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에너지는 틀림없이 내가 가진 그 단호하고 분명한 경향성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유가(儒家)의 사유를 빌어 말하자면 그것은 나의 기질지성(氣質之性)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5년간 내가 마주치고 겪어내고 사유한 흔적들을 정리하여 이번 책으로 펴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나는 부단히 흔들리고 있는 존재였구나. 일반적 통계로 볼 때 내가 이번에 책으로 담아낸 최근 5년의 시간은 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절반을 통과하는 시점에 관한 사유입니다. 특히 삶을 전환하여 살고 싶은 삶을 살아보겠다는 선명한 지향을 품고 살아온 한 인간이 겪고 헤매고 정제시킨 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고를 정리하다보니 그 5년 동안 나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에너지로 삼아왔던 기질적 선명함이 흔들리고 또 누그러들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거나 용서할 수 없는 지점들을 가만히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의 표지가 내심 마음에 든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세계를 인식해왔던 논리구조가 인()과 과()의 체계에 주로 의존했던 나인데, 세계는 단순히 ‘cause-effect’의 체계로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헤아리는 5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과 과() 사이에 하나가 더 개입하며 일이 벌어지고 세계가 굴러간다는 것을 헤아리는 계기가 된 5년 이었습니다. 내가 알아챈 그것, 즉 인()과 과() 사이에 개입된 것은 바로 연()입니다.

삶에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나 봅니다. 다음 편지부터는 그런 이야기, 즉 세월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주제로 담아 전할까 합니다. 물론 그것은 보편성을 갖지는 않습니다. 내가 세월을 통해서야 겨우 알아낸 것들을 중심에 둔 사적인 사유에 불과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연()에 대해 조금 더 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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