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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일 00시 00분 등록

걷고 있습니다. 하루 약 7시간여의 행보가 며칠째 인가요. 등 떠밀려 하는 일도 아닌데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만찬에 초대된 손님으로 누릴 수 있었음을. 자연은 본연의 자태를 찾는 이에게 속살을 드러내주었습니다. 너른 들판, 빽빽한 숲속, 하얀 모래의 해변 등. 날이 어수룩할 즈음 발바닥에 피로의 신호가 전해옵니다. 속도가 느려집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걷는 까닭이.


1. 모두가 길이라는 명제아래 존재했다

많은 길들이 펼쳐 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야하는 오름, 발목 젖힐세라 날카로운 자갈밭, 한적한 오솔길, 딱딱한 아스팔트, 먼지 날리는 메마른 길. 여러 대상을 만났음에도 모두 길이라는 명제로 통했습니다. 쉽든, 어렵든, 반기든, 그렇지 않든 앞에 닥친 그 길을 걸어갑니다.


2. 걸음에 잠기다

초입. 여러 생각이 듭니다. 끝까지 갈수 있을까. 몇 시나 되었는지. 방향은 제대로 맞겠지. 등줄기 땀이 베일 즈음 내리막길과 바위를 밟고 있는 두 다리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러다 적막함 가운데 타박타박 발소리와 가쁜 호흡의 공간이 터질 즈음이면 그저 걷는 것에 잠기게 됩니다.


3. 나를 보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봄을 시샘하는 노란 유채, 붉은 벚꽃, 둥둥둥 하늘구름, 풀잎 적시는 바람의 물결, 흩날리는 바다. 그러다 길가 반사경에 비친 자화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넌 누구니. 두발과 그림자 드리운 실루엣의 또 다른 나를 렌즈에 담았습니다. 멈추지 않는 자신. 뿌듯합니다.


4. 그럼에도 묻는다

계획된 코스의 완주. 허전함이 다가옵니다. 그랬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이 걸음이 목마름의 해소와 앞으로 가야할 곳의 실마리를 보여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얻었을까요. 자신감일까요. 경험일까요.


마을을 지나던 중 말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섹시한 엉덩이와 근육질 잘빠진 몸매에 자연스레 눈웃음을 건네게 됩니다. 노란 유채 꽃밭. 예비부부가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그때처럼 보랏빛 미래를 꿈꾸는 그들에게 작은 축복을 보내었습니다. 오름에서의 논밭, 자태를 자랑하는 산. 그 정취에 반해 벤치에 앉아 바라봅니다. 출항을 앞둔 배, 밀려오는 물결, 갈매기, 나지막한 섬들. 그냥 좋았습니다.

완주가 목적이 아닌 과정의 모습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의 즐거움에 충실하다는 것. 그것이 의미였습니다. 근사한 2층 찻집 멋진 조망아래 한낮 고구마 라테 한잔의 취함. 이것이 행복이고 기쁨이었습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저서 <걷기예찬>을 통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시간은 그 세계에 충실하였습니다.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아마도 오늘처럼 걸음을 하다보면 북극성의 자취를 대할 수 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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