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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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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0일 11시 43분 등록

그린파크.jpg

                                                                                               일요일의 그린파크




요즘 산책을 나가면 경이롭다. 누군가 밋밋한 세상을 수채화로 만들어 놓았다. 삐죽삐죽 움찔움찔, 모조리 어린 것들, 모조리 살아있는 것들이 약동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시커멓고 말라빠진 나뭇가지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 수만 개의 팝콘덩어리가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든다. 피어난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로구나! 감탄도 잠시, 성질 급한 벚꽃이 이내 지기 시작한다. 벚꽃은 떨어지면서 완성되는 꽃이라고 했던가, 쏴아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면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비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것은, 우리도 언젠가 저처럼 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일까. 봄날은 그야말로 삶의 절정과 허무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맘때는 풍경이 매일 달라진다. 서늘한 미인 진달래가 스러지자마자, 짙은 화장을 한 철쭉의 기세가 등등하다. 도르르 나팔처럼 말린 잎새를 밀고 나오는 비비추의 군악대가 우렁차고, 열병이라도 하듯 줄지어 선 원추리는 하루가 다르게 우썩우썩 자란다. 스마트한 라일락과 수줍은 색기를 뽐내는 복숭아꽃이 여기저기에서 피어난다. 아아! 감탄하며 길을 걷다가 그늘에서조차 향기나는 녹색이 묻어나는 통에 깜짝 놀란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인부들이 막 쳐낸 솔잎을 바닥에 깔아둔 것임을 알고 기분좋게 웃는다.

 

2014년 봄에 런던에 갔을 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유명한 대영박물관이나 뮤지컬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원이었다. 내게 런던은 공원이다. 하이드파크를 필두로 그린파크며 켄싱턴파크 등 도심지와 공원이 붙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리젠트파크가 있어 내가 가 본 곳만 해도 네 군데인데 저마다 공원을 즐기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무 곳이나 땡기는 곳에 누워 자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 두 여성이 고양이자세로 요가연습을 하는가하면, 아크로바틱을 연습하는 청년들은 몸을 공중으로 날린다.

 

주말에는 더욱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그린파크를 가득 메운 인파가 장관이었다. 혼자 책을 보거나 누워 있기,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즐기거나 술 한 잔 하기, 다 큰 청년들이 공 가지고 놀기.... 그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역동적인 액티비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가 똑같은 방식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 경이로웠다. 우리는 공원도 많지 않지만 나부터도 공원에서 피크닉하는 것을 그다지 재미있는 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2년 만에 런더너에 성큼 다가섰다.^^ 봄볕 아래 잔디밭에 앉아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

 

더 이상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다 혀를 대 보아서 쉽사리 마음이 달아오르지 않고, 별다른 일이 일어날 확률 자체가 줄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감사를 알게 된 것이 크다. 나처럼 계산발 안 서고 인내심 없는 사람이 이만큼 살아 온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를 중퇴한 농사꾼과 결혼하는 파격을 저질렀지만 그는 가방 끈 긴 나보다 더 침착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따로 지낸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고향 오라비처럼 김장이며 쌀을 대 준다. 맨손으로 4억을 대출하여 학원을 지었을 때도 경매라거나 험한 꼴을 당하지 않고 13년간 그것으로 먹고 살았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4년이나 수입이 없었지만 거리로 내몰리지 않았고, 첫 책을 쓰자마자 글쓰기강의를 시작하여, 나 좋을대로 하고 싶은 일 하며 잘 살고 있다.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심신건강하고 직업정신 튼튼하여, 내 빈약한 생활인으로서의 의식에 귀감이 되어 준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아니한가!

 

 마침 온세계에 저성장의 골이 깊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이 거세다. 귀농이며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 정리열풍 등 조촐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는 추세인 것이다. 이번에 수강생들과 함께 책을 준비하면서도 새삼 놀랐다. 다들 좋다고 하는 직업에서 벗어나 내면의 북소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대폭 많아진 듯하다. 일상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라고 하신 구선생님의 말씀도 기억난다.

 

부탄의 젊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슬로 라이프의 선구자이다. 197617세였던 그는 GNP(국민총생산)보다 GNH(국민총행복)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정책으로 입안하기에는 막연한 개념인 GNH를 정립하고 입법화했다. 무료 교육과 무료 진료를 도입하고 세계 유일의 금연 국가를 마들었으며, 녹지를 늘렸다. 이후 GNP보다 GNH가 더 중요하다는 개념은 하나의 이론이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로 우리나라의 10%에 불과한 부탄은 여전히 행복 지수 최상위권 국가다. ”

 

우리도 부탄의 왕처럼 나를 진정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점검해 볼 일이다. 내게 봄날의 산책이 지극한 기쁨인 것처럼, 행복해지는데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이 사례를 <성장에 익숙한 삶과 결별하라>라는 책에서 보았다. 기자부부가 안식년에 미국에서 지내며 쓴 책인데, 조근조근 수치를 동원하고, 자신들의 삶에 대입하며 조금 느리고 소박한 삶으로 다가가자고 권유하는 자세가 참 좋다. 그들은 안식년을 통해 이 책 말고도 <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라는 책도 썼다. 부부가 함께 책을 쓰면서 생산적인 안식년을 보냄으로써 여러 면에서 성숙의 발판을 마련한 일이 정말 좋아보이는데, 이런 일이 돈만 가지고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 출간소식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

 

제가 이끄는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http://cafe.naver.com/writingsutra 카페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쓴 책이 나왔네요. 때로는 무대뽀로, 때로는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  열 분의 사례에서 벼락같은 암시를 받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일 그대가 진짜 내 인생을 갈망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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