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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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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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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1일 22시 11분 등록

 

이른 아침 여의도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차를 놓고 마주앉았습니다. 밖에는 어제 곡우(穀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푸르러가는 숲을 여태 적시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도란도란 숲과 삶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점심 밥 때를 훌쩍 넘긴 시간 우리의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고 서로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곧 비도 잦아들었습니다.

 

비가 그치자 비안개도 걷혔습니다. 사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풍경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곳곳에서 새들이 날아올라 자리를 옮기며 맑은 노래 소리를 토해냈습니다. 새들의 앙상블이 연주처럼 흐르고 섞이며 나의 마음을 바람나려는 사내의 그것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숲 전체가 그려내는 풍경 역시 누구도 그려낼 수 없는 최고 경지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수정을 마친 꽃이 흩어지며 사라져 가고 있는 벚나무는 새 잎을 틔우며 연분홍 꽃 색과 연녹색 잎 색을 뒤섞었습니다. 초봄에 심은 수수꽃다리는 하트 모양 연녹색 잎겨드랑이에 연보라 제 꽃을 한창 피우는 중이고, 튤립나무는 그 특이한 방패모양의 제 잎을 쑥쑥 키우고 있습니다. 원추리 잎사귀와 낙엽송은 어느새 연록의 빛깔을 담록으로 바꿔 입었고, 먼 숲에 자리한 개복숭아는 아직도 분홍빛깔이 찬란합니다. 잎 없이 피었던 돌배나무 흰꽃은 어느새 연한 녹색 제 잎과 섞이는 중인 반면, 팽나무는 이제야 겨우 암갈색 나뭇가지에 매단 제 잎의 움을 연녹색 촛불을 밝히듯 틔우는 중입니다. 한편 산뽕나무나 대추나무는 아직도 겨울인양 도무지 움조차 틔우지 않고 있습니다.

 

소리와 향기와 빛깔과 햇살과 바람이 뒤섞여 빚어내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해 놓고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짧은 언어가 가난하다 여겨질 뿐입니다. 이 계절에 나는 늘 생각합니다. ‘, 내가 그림을 좀 그릴 줄 안다면 이 모습을 화폭에 담아둘 텐데재주 없는 나는 저들이 섞이며 이루어내는 이 계절의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을 이 형편없는 언어로 그저 되는대로 나풀댈 뿐, 어느 한 구석도 제대로 담아 전하지 못합니다.

대신 비가 그치고 난 이 숲의 저 형언하기 어려운 풍경, 그것의 본질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내가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양성이요 동시에 그것의 뒤섞임입니다. 제 크기나 높이의 다름, 제 뻗어가는 모양의 다름, 피고 지는 시간의 다름, 제 고유한 빛깔의 다름, 제 서 있는 자리가 빚어내는 울퉁불퉁한 기반의 다름, 생명 저마다가 지닌 강도의 다름, 토해내는 소리의 다름, 향기의 다름. 바로 그 다름이 상존하고 뒤섞이는 데서 숲은 이토록 찬란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동일성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오직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저토록 찬연할 수가 없습니다. 동일한 소리, 동일한 빛깔, 동일한 향기, 동일한 크기, 동일한 시간, 동일한 모양, 동일한 기반, 동일한 강도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끔찍하거나 참혹한 세상일 뿐입니다.

오늘 비 그친 숲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저 아름다운 숲을 보면서 나는 동일성에 대해 길게 생각하는 오후를 보냈습니다. 숲은 동일성을 거부하고 다양성과 그 뒤섞임을 통해 아름다운 세계를 빚어낸 놀라운 공간입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인간의 공간은 동일성을 향해 달려온 세계입니다. 다음 편지에 인간이 만들어오고 있는 동일성의 무덤에 대해 이어보겠습니다. 더 자주 저 아름다움과 마주하는 한 주 보내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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