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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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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30일 07시 16분 등록

대저 그의 모습은 이러합니다. 자그마한 키로 별다른 특색은 없지만 넓은 이마에 빛나는 눈이 한번 본이는 쉽게 잊히지 않게 합니다. 내면의 여백이 담긴 소박한 인상. 아마도 자연의 순리에 평생 순응해 살아왔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거친 손등은 그동안의 여정이 쉽지 않았음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노동을 통한 굵은 힘줄은 약삭빠른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강단을 보여줍니다. 흙투성이 작업복에 검은 장화, 손에는 날선 농기구가 분신마냥 자리합니다.


농사일로 일생을 살아온 이를 만났습니다. 5일마다 열리는 우시장에서 소 여섯 마리를 샀다며 안내하는 그. 마리당 365만원. 예전보다 가격이 올라 이년을 키워 되팔면 약 육백만원의 이익을 본다며 씨익 웃음을 내비칩니다. 키우는 정성은 자식과 진배없겠지요.

생후 일 년 남짓한 어린 송아지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터라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는 처음입니다. 열심히 짚을 머금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목이 마른지 연신 물을 들이킵니다. 한 녀석은 본능적 욕망인 짝짓기 행위로써 동료의 등에 올라타는 민망함을 연출하기도합니다.

인간의 식탁에 올리기 위해 남성 상징을 없애는 날이면 종일 먹지도 못하고 끙끙됨에 그 고통과 함께한다는 그. 아이러니죠. 그 덕에 성적 본능이 사라진 성격이 유순해진 맛난 고기를 우리는 대신 맛볼 수 있으니까요. 고유의 성을 잃어 남자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입장은 어떠할까요.


트럭에 실려 목적지로 오는 동안 받은 적잖은 스트레스를 송아지들은 호소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요. 익숙한 곳을 떠나왔다는 것. 두려움, 긴장, 불안. 현재 나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새롭게 시작한 곳에서의 공간은 처음 꿈꾸던 곳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본인 입맛에 맞추기는 어려울 터이겠지요. 하루의 일상을 바라던 기대치로 채우기 위해 애를 써봅니다.

코를 벌렁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내뿜습니다. 감정을 주체치 못해 길길이 뛰어다니며 짚을 씹다가도 똥을 싸댑니다. 그러다 바닥에 깔아놓은 톱밥이 마음에 드는지 드러누워 등을 비벼대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온순한 녀석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자신의 갈 길을 짐작한 듯 일찌감치 받아들임이 아닐까도 여겨집니다. 낯섦에도 짚을 한 움큼 입에 넣어 잘도 먹어댑니다. 한참을 지켜보던 중 순한 커다란 눈망울이 나를 마주대함이 느껴졌습니다. 잠시의 침묵. 수놈임에도 쌍까풀이 크고 시원한 눈매가 괜히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아이와 같은 천진함과 순수함의 가운데 농부의 모습이 함께 자리합니다.


농업, 어업, 임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하겠지요. 요새 같은 세상에 누가 일부러 이렇게 힘든 일을 스스로 하려 할지요. 그럼에도 오늘 만난 이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세상에 꼭 있어야 되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 이들로 인해 우리가 누림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IP *.234.1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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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18:19:06 *.230.103.185

나도 언젠가 트럭에 실린 소의  눈망울에 가슴 철렁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찌나 겁에 질려 있는지, 감정이 생생하게 들어 있었거든요.


마흔아홉 이라는 키워드가 듣기만해도 전달하는 게 있네요.

잘 풀어내서 또 한 권의 책으로 거듭 나기를 기원합니다.


출간소식 링크 고마워요. 승호씨.

신명나는 나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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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4 07:58:45 *.126.9.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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