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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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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8일 13시 04분 등록

맨부커상, 이번에 처음 들어 보았지만 이미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이 같이 후보자로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상의 위상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한 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최종심에 올랐다는 소식에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수상의 쾌거와 함께 책이 도착했다. 수상소식이 알려지자 한 온라인서점에서만 1분에 7권씩 팔린다든가, 사람들은 승리에 열광한다. 나도 기꺼이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작년에 조성진이 신드롬을 일으킨 것처럼 한 강도 하나의 상징이 되어 문학과 창작에 대한 사랑을 증폭시켜 주면 좋겠다.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얼핏 에로틱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어서 잘 읽혔다. 그러나 나는 전에 읽은 <소년이 온다>가 훨씬 좋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 <채식주의자>에서

 

나는 이 부분을 <채식주의자>의 핵심으로 읽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폭력에 대한 책으로 보인다. 작가는 폭력을 말하기 위해, 겁에 질린 눈망울을 지닌 소와, 우리와 똑같이 아픔을 느끼는 동물을 여전히 잡아 먹는 세태를 선택했다. 그러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가 나오고,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나온다.

 

이 부분이 제일 강렬했던 만큼, 비폭력을 상징하는 채식에서 꽃과 나무의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충격적인 삽화로 풀어낸 몽고반점, 정신병원에 갇힌 영혜를 돌보는 언니의 상념을 다룬 나무 불꽃은  다소 심심했다. (영혜가 점점 나무로 변해간다는 메타포가 없지는 않다.)

 

 

덩굴처럼 알몸으로 얽혀 있던 두 사람의 모습, 충격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짓은 흡사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  무심한 듯 정곡을 찌르는 문장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지옥같은 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작가는 형부와 처제의 관계라는 장치를 동원하지만, 폭력에 대한 순수한 고발이 탐미주의로 읽힐 염려도 있고 너무 에둘러 가는 감이 든다.

 

거기 비하면 광주항쟁을 전면으로 다루고 있는 <소년이 온다>는 버릴 것이 없다. 자연스러움과 인간다움을 가로막는 폭력을 다루는데, 가장 폭력적인 사태가 동원되었으니 그럴 수 밖에. 나는 몇 달 전 <소년이 온다>를 읽고 감흥에 겨워 이런 리뷰를 썼다.

 

--------------

작가는 광주 출신이지만 5.18 당시 서울로 이사 와 있었다중학교 교사이던 아버지(소설가 한승원)가 교직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12살이 되었을 때 어린 한강은 아버지와 삼촌이 쉬쉬 하며 돌려 보던 광주항쟁 사진집을 보게 된다게다가 광주에서 살던 집에 이사 온 가정에서도 중학생이 둘이나 희생되었던 것이다.

 

고향이 아니고몇 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람들이 아니어도 5.18은 가슴에 얹힌 돌 같은데작가는 언제부터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을까그녀는 1970년생이니 45세에 이 소설을 썼다내가 너무 늦게 왔지.... 망월동 묘역에서 중학생 동호의 묘지를 찾아 다니고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읽으면서도 작가는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도무지 넘치는 데가 없다조신하게 낮은 목소리가 책날개에 실린대학 새내기라도 믿을 정도로 여린 모습과 꼭 닮았다.

 

글 쓰는 이가 너무 감정을 고조시키면 독자가 감정이입을 못 한다더니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을 실감했다짧고 담담한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너무 크고 깊어서 나는 몇 번이고 읽기를 멈춰야 했다중학생 동호를 포함해서 당시 상무대에서 시신을 지키고 있던 시민군 몇 명의 시점으로 바꿔 가며 5.18을 기록한 이 책은근세사 최고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도 너무 아름다웠다책에서도 시신에서 빠져 나온 영혼의 시점이 나오거니와 그녀의 문장은 몸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어른대는 영혼처럼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느끼는애틋한 정령 같았다사망자 166(그 중에 청소년 40명 넘어), 행방불명 54명의 원혼에 뿌려지는 꽃잎처럼 보드라우면서도 한이 깊었다.

 

무섭다.

사료에 의거하여 곳곳에 꿈보다 무서운 생시를 그리고 있기에.

두렵다.

이런 일을 자행하는 세력이 국가와 동일시되었으며또 불과 35년 만에 그런 사실을 깡그리 잊고 사는 우리가.

 

치밀한 자료조사를 문학적 진혼굿으로 승화시킨 글을 울면서 본다어떻게 이런 책을 이제야 보았을까죽은 자는 원통하지만 살아남은 자도 죽음 못지 않게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겠구나 뒤늦은 인식을 한다세월호 사건이 또 다른 5.18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그런 끔찍한 일을 용케 피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소시민적 안도와멀쩡하게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 켜켜이 쌓인 불의에 진저리를 치는 공분을 동시에 느낀다학살자는 천수를 누리고작은 비리가 수치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조롱받는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도 소년이여, 너만은 부디 깊이 잠들어다오. 꿈으로 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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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된 시점만 보면 <채식주의자>2007년이고 <소년이 온다>2014년이다. 그동안 한강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이 되었으니 인간적으로나 작가로나 가열찬 성숙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한강의 작가적 역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으니 다음에는 <소년이 온다>로 노벨상을 기대해도 될까? 문학이라는 가장 부드러운 칼이 독자의 마음에 꽃잎처럼 내려앉아 단단한 비폭력정신으로 자리잡는 것을 생각만 해도 벅차다. 마침 오늘이 5.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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