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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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누구를 만나도 그가 거짓을 내뱉는지 진실을 토하는지 거지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누군가 나를 어떠한 색(色)으로 휘저으려 해도 웬만한 色에는 나를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 공자님 지칭하신 마흔 살의 불혹(四十而不惑)을 거뜬히 만나고 통과했나보다 여기게 된 것입니다. 세월이 더 흘러 이제는 그 어른께서 이르신 무릇 쉰 살의 당위(五十而知天命)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내 생각하기에 마흔, 그 불혹의 경지를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는 간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로 다가서는 어떤 뜨겁거나 차갑거나 또는 사특하거나 부당한 욕망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눈을 확보하는 것이요, 동시에 내 안에 일어서고 작동하는 탐진치(貪瞋癡)의 욕망을 자신 앞에 툭 던져 놓고 물끄러미 바라봄으로써 기꺼이 그것을 스스로 철회하거나 소멸케 할 수 있는 마음의 담담함과 용맹을 확보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너울대는 욕망들의 춤사위 너머로 연이어 흐르는 부질없는 것들의 부스러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십대 나는 비로소 결정적 순간에도 딱 멈춰 설 마음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곧 가득 맞이할 쉰, 그 천명을 안다는 경지를 목전에 두고 그 뜻을 내 경험에 비추어 어렴풋 생각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터득해 낸 그 뜻은 ‘누군가 비록 제 욕망의 춤사위를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힘이 하늘의 운행과 맞지 못한다면 무용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라 여기는 수준입니다. 하여 이제 나는 자주 나와 만물의 운행이 저 하늘의 운행과 맞물려 작동하는 이치에 겸허히 머리를 조아리게 됩니다.
가까이서 내 나이의 흐름과 그에 따른 이런 변화를 바라봐온 나보다 나이 어린 벗이 내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해야 하늘의 운행과 리듬 위에 자신의 삶의 운행과 리듬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겁니까?” 나 역시 그지없이 미욱함으로 그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날 몇 달을 망설이다가 내가 이렇게 답해 주었습니다.
“내 마음에 행여 지금 불혹의 힘이 생겨났다면 그것에 이른 첩경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내가 삼십대에 수없이 현혹돼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현혹의 대가를 그 만큼 아프게 치러야 했습니다. 아픔의 대가 덕분에 나는 비로소 자주 내 욕망의 주인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내 욕망의 주인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세상의 욕망이 나를 삼켜 아찔해지는 날들이 이제 없게 된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내 행실에서 행여 이제 겨우 내 삶의 운행과 하늘의 운행 간 조화를 구하는 경지를 언뜻 보았다면 그것은 욕망의 주인자리를 차지했다는 기고만장으로 오만에 빠진 행실이 많았었다는 증거를 본 것입니다. 기고만장의 대가로 나는 주체 인간의 오만을 거두고 하늘을 우러르는 시간을 더 자주 갖게 된 것이겠지요.”
내 대답의 요지는 그렇습니다. 수없이 미혹되어 불혹을 만나고, 욕망의 주인자리를 차지하고 사는 당당한 날들 속에서도 수없이 하늘의 정을 맞으며 삶이 무너지는 여러 번의 경험을 했기에 천명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요지의 대답이 공자가 마주한 차원을 담고 있는지를 확신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다만 나보다 더 견고하게 불혹과 지천명의 경지를 헤아리고 있을 당신께 지정(指正)의 조언을 구하는 차원에서 수줍게 오늘 편지에 그 대답을 적어본 것입니다. 무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내게 땀을 흘리라 이르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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