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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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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2일 08시 03분 등록

저는 직장생활을 17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재미있게 일한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제 나이 서른 즈음에 드림커뮤니케이션즈(이하 드림컴)라는 홍보회사에서 일할 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두번째 직장이었죠. 첫 직장은 말단사원부터 사장까지 공돌이인 벤처기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했지만 영업을 지원하는 잡무가 많아 전문성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첫 직장을 그만두고 약간의 공백기를 갖다가 드림컴에 지원했습니다. 홍보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요. (당시 드림컴은 장안에서 가장 잘나가는 홍보회사였거든요.) 입사 전형 중에는 특정 기업의 상황을 알려 주고 홍보제안서를 작성해 발표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해보는 것이었지만 나름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입사했다는 후문이.... 하하하!


며칠 전 드림컴 동료들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모두들 제 또래들인데요,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다들 예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철부지 같았던 이들이 세계적인 PR 회사의 부사장으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으로, 공익 캠페인 전문가로 자신의 영역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조직을 떠나 자신의 꿈을 좇는 이도 있구요!) 어디 그 뿐인가요? 당시 드림컴 사장님은 현재 여의도 모처에서 횟집을 하고 계십니다. 자칭타칭 '습관성 창업증후군'에 걸린 분이라 어디로 튈지 궁금했는데 이제 횟집 사장님이 되신겁니다. 지난 모임은 그 횟집에 모여 옛날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래된 일인데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이 있었습니다.


장면 하나

그 회사에서 첫 아이를 가졌습니다. 매일 분당 집에서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삼성동 사무실까지 출퇴근을 했는데요, 입덧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아침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날도 많아 고구마나 사과, 빵과 같은 간단한 요기 거리를 가져오곤 했죠. 그런데 그 음식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가 있었습니다. 같은 팀의 팀원인 노모군!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만 줘"라는 말을 하면 저도 모르게....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임산부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을까요? 역시 대답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배가 고팠을 뿐이다"였습니다.


장면 둘

역시 임신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 요즘은 세련되고 예쁜 임부복이 많지만 당시에는 부른 배를 가리는 용도에 충실한 옷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거기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패테(패션 테러리스트)라 옷 입는 센스는 한참 부족했구요. 겨울 내내 펑퍼짐한 방울이 달린 비둘기색 망토를 입고 다녔는데, 어느 날 팀원과 외근을 나갔다 사무실에 들어오는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와, 둘이 만화영화 은하철도999의 메텔과 철이 같아!" 철이는 장면 하나에서 등장했던 임산부 간식 약탈자와 동일인!


장면 셋

홍보회사의 일이란 것이 홍보제안서를 만들고 경쟁 PT에 참여해 계약을 따오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팀장이었던 저는 새로운 고객사를 영입하는 '영업 활동'에 집중했죠. 그 때 저와 함께 많은 고객사를 방문했던 모 부장님이 계셨습니다. 참으로 선하고 성실한 분이였습니다. 둘이 정말 많은 고객사를 열심히 다녔건만 어찌된 일인지 새로운 계약은 한 건도 채결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참 답답하고 속상했는데, 고민도 정말 많이 했는데.... 언젠가 부장님을 뵈면 "그때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돌이켜 보니 그때는 제에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야근을 해도 지치지 않는 팔팔한 체력과 젊음, 전문가로 성장하고 성공하겠다는 열정과 야망, 함께 울고 웃으며 즐겁게 일했던 좋은 사람들. 지금도 저의 서른 즈음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제 인생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아, 지금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무리하지 않을만큼 일하는 지혜도 있고 진정성있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좋은 사람들과는 조금은 멀어진듯 합니다. 홀로 일하는 1인 기업가의 숙명이랄까요. 


그대는 어떤가요?

지금까지의 직장생활 중 언제가 가장 즐거웠나요?

그 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요?        


다음주 마음편지는 여름휴가를 맞아 쉬어 갑니다. 남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로운 활력을 충전해 오겠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책 한 권도 챙겨가렵니다. 그대도 쉬어가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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