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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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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5일 17시 27분 등록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했는가?” 소크라테스와 그의 오랜 친구인 카이레폰은 저명한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의 강연장에 도착하자마자 관계자에게 물었다. “네, 방금 끝났어요. 얼마나 훌륭했는지 몰라요. 고르기아스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거든요.” 소크라테스는 친밀한 어조로 친구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광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자네 때문이야.” “걱정 말게. 내가 고르기아스와 잘 아는 사이이니 만남을 주선해 볼게.”


고르기아스를 만나 대화를 시작하려는 찰나, 폴로스가 등장했다. 고르기아스를 숭배하는 젊은 수사학 교사다. “괜찮으시다면 내게 질문하세요. 고르기아스님은 피곤하신 것 같아요. 긴 연설을 방금 끝냈거든요.” “자네가 고르기아스보다 내게 더 잘 답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건가?” 카이레폰의 물음에 “내 답변으로 충분하다면 문제될 게 없지 않을까요?”라고 응했다. 이렇게 하여 카이레폰은 폴로스에게 질문하고 이 광경을 소크라테스가 지켜보았다.


“폴로스, 고르기아스님이 정통한 기술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그 분을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나?”

“카이레폰님, 사람들은 사이에서는 많은 기술과 학문이 있는데 그것들은 실험과 경험을 통해 발견되었어요. 경험은 지식을 통해 우리의 삶이 나아지게 하고, 경험 부족은 ‘우연히’ 그렇게 하지요. 이 모든 기술과 학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또 어떤 사람들은 저런 것들에 관여하지만, 가장 훌륭한 것들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관여하지요. 여기 계신 고르기아스님은 그런 분들 가운데 한 분이시며, 그분께서 관여하시는 것은 가장 훌륭한 기술이랍니다.”


폴로스의 태도는 자신만만했지만 답변은 논점을 빗나갔다. 동문서답이라고 말하며 소크라테스가 끼어들었다. “폴로스, 고르기아스님이 어떤 기술에 정통하시냐고 카이레폰이 물었을 때, 자네는 마치 누가 그 분의 기술을 비난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기술을 칭찬만 했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답변하지 않았네.” “하지만 저는 그것이 가장 훌륭한 기술이라고 답변하지 않았던가요?” “아무도 고르기아스의 기술이 어떤 성질인지는 묻지 않았네. 질문은 그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고르기아스님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것이었네.”


결국 폴로스는 물러나고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의 토론이 시작된다. 플라톤 대화편 『고르기아스』의 도입부에 나오는 얘기다. 이 작품은 수사학의 본질을 고찰함으로 좋은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플라톤은 능숙한 작가다. (작품 전체가 아닌) 짧은 도입부에도 교훈을 심어 놓았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속성을 구분하여 풀로스의 오류를 지적했다.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어떠한가’를 대답했다는 것이다. 정의가 객관적인 접근이라면, 속성은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될 확률이 높다. 


‘정의’와 ‘속성’의 혼돈은 일상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궁금증이 일어 그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데, 상대는 자신이 느끼는 호불호의 감정이나 추구하는 가치로 대답하는 경우다. 나는 지금 구례 여행 정보지를 보고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심원마을에 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1) 지리산 750m 산골오지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2) 여름철 계곡에서 피서하기에 더없이 좋고 도시를 떠나 하룻밤 산속에서 묵어가기도 좋은 곳이다.(번호는 필자 표기)” 1번은 객관적인 정보인 반면 2번은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다. 만약 2번과 같은 내용만 나열되어 있다면 여행 정보지로서 활용도가 낮아진다.


플라톤은 글을 잘 쓰고 말을 분별 있게 하는 원칙을 알려준 셈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은 어떤가. ‘나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정보 위주로 대화하는가, 주관적인 느낌과 나의 관점을 위주로 대화하는가?’ 안동을 다녀온 여행기가 객관적인 정보는 없고, 글쓴이의 느낌과 생각만 가득 담았다고 치자. 그래서 안동 여행기가 아니라 영주 여행기라 해도 무방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아쉬운 글이다. 앞서, 심원마을에 관한 2번의 정보에 해당될 여행지는 얼마나 많은가.


최상의 말과 글은 객관성(objectivity)과 주관성(subjectivity)의 조화로움을 이룬다. 정의를 모른 채로 가치 판단만 하거나 성질에만 관심을 두었다면 두 가지 실천지침을 권한다. 1)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를 묻고(사전 찾기로 간단히 해결된다) 2) 객관적인 정보와 사실을 확인하라(인터넷 검색이 도움이 된다). 좋은 글은 필자의 진솔한 생각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대상을 정확히 포착한다. 대상을 포착하려는 노력은 곧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포착하지 못한 글은 자기사랑에 빠진 이들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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