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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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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7일 11시 59분 등록

만두.jpg



지난 일요일 아침은 유독 달콤했지요. 나는 전날 글쓰기수업이 있었고, 아들은 월요일에 월차를 냈는지라 여느 때보다 두 배는 더 느리고, 여유 있게 막 일요일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직장 때문에 따로 지내는 딸에게서 허리가 아프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 딸은 원래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조금 무리하면 곧바로 허리에 신호가 오지요. 아는 병이지만 심심할 정도로 나른하던 공기에 갑자기 긴박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딸에게 있는지라 아들이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딸을 데려 왔지요. 아침에 꼼짝도 못했다는 딸은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빠르게 회복되었구요. 요즘 체력이 딸리던 차라 진단서를 떼서 제출하고 3주간의 병가를 얻었으니, 결과적으로 잘 된 셈입니다. 잠시 빡세게 돌아가던 공기가 다시 평온해지고, 셋이 TV를 보는 시간이 최고의 평화라는 생각에 감사해집니다.

 

전 같으면 더운 날씨에 세 끼를 차려야 하는 휴일이 짜증났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네요. 갈수록 사 먹는 음식이 미덥지 않고, 딸에게 집밥을 먹이고 싶기도 하지만 그 중 제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제일 평범한 하루가 최고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외식보다 집밥, 휴가보다 일상이라고 할까요? 이 더위에 길 나서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네요.

 

점심으로 별미만두를 준비합니다. 밀가루가 좋지 않다는데도 밥만 먹기는 너무 무거워서 비빔국수를 자주 하는 편인데 오늘은 만두전문집에서 사 온 만두까지 있습니다. 마른 국수를 손가락으로 감쌌을 때 단면이 백원 짜리 정도 되면 일인분으로 적당합니다. 오늘은 만두가 있으니 칠십 원 정도만 잡습니다. 국수가 끌어 넘치려고 할 때 찬 물을 한 대접 넣습니다. 그러면 국수가 쫄깃하게 삶아진다구요. 만두도 너무 오래 삶아지지 않게 지키고 있다가, 말갛게 속이 비칠 때 꺼내 놓습니다.

 

국수로 만두를 싸서 먹으면 궁합이 맞습니다. 국수나 쫄면이 좀 더 매콤달콤해야 좋은데 건강을 위해 순하게 하다 보니 좀 서운하지만 그래도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는 평소와 다르게 발딱 일어서서 설거지를 하고, 막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오는 물을 허드레로 쓰려고 받아놓습니다. 그새 땀이 차서 찬물로 샤워하고 읽던 책을 다시 펴 듭니다. 이렇게 몸이 가벼워진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네요. 하나, 글쓰기강좌에 인원모집이 어려워서 너무 신경을 썼다는 것. , 마음에 꼭 드는 책을 발견했다는 것 (이승욱, 소년), , 우리 카페의 유입어를 보다 든 생각 하나....

 

보통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기운이 딸리고 처져야 하는데, 아니던걸요. 삼복에 글쓰기수업을 들으러 온 소수의 수강생이 더욱 소중해졌으며, 예전에 별 고민없이 수강생이 채워진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은혜였는지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있을 책쓰기강좌 모집에 미리 공을 들여야겠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지요. 요컨대 작은 곤란을 겪으며 부쩍 지혜로워진 거지요. 다독가라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책에 깊이 공감하는 쪽이라, 진짜 땡기는 책을 발견하면 아주 신나는데 그 일도 겹쳤구요.

 

요즘 제 글쓰기 카페 유입어에 김글리가 많아요. 후배연구원인데 제가 그녀의 첫 책에 대한 리뷰를 올려 두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최근 김글리를 찾는 손길이 구선생님을 찾는 손길을 뛰어 넘은 거에요. 물론 구샘께서는 돌아가신 지 3년이 넘었고, 김글리는 막 첫 책을 내고 여러 곳에 인터뷰를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연구원을 하던 시절 그녀가 20대의 대학생이었고 막내 이미지가 강한 만큼, 어떤 사소한 징표로든 막내가 스승을 능가했다는 것이 놀라웠지요.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어.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말이 새삼 뼈저리게 다가왔습니다. 무심히 몰려왔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여일하게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흐르고 있고, 나는 언젠가 옛사람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 거지요. 그런데 그게 슬프다거나 그렇지 않고, 섭리 하나를 깨우친 기분이었어요. “어쩌다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라면 전달이 될까요?

 

조금은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적어도 지금 구상하는 일을 다 해 보려면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이제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내가 나이가 많은데,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이 품어 주어야지요. 전에는 그저 내 마음만 중요했다면 이제 남들 보기에도 좋을, 형식에도 신경써야겠어요. 그 중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어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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