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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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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8일 21시 59분 등록

 

딸을 둔 엄마가 딸의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다짐을 하며 살았답니다. ‘나중에 딸이 남자를 선택하게 되면 딸의 선택에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스물두 살이 된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남자 친구라는 녀석이 딸의 미래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결국 이렇게 조언을 했답니다. “아무리 봐도 걔는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많은 남자들을 만나 봐. 그래야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 하지만 딸은 들은 척도 안하고 여전히 그 남자에게 몰두하고 있답니다. 옆에서 누나에게 조언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고등학생 아들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엄마는 지금 누나에게 바람을 피라고 하는 거야?” 나는 이 고등학생 아들의 순결한 인식이 위태로워보였습니다.

 

한편 내게 마흔다섯 살의 노총각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20대까지 운동선수였습니다. 운동 밖에는 해본 게 없는 탓인지 아직도 그는 너무나 순진하고 세상물정도 잘 모르는 친구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노총각인 이 사람이 너무도 걱정인 눈치인데 정작 이 친구는 연애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까닭을 물어보니 저는 사랑을 믿지 않아요. 20대에 좋아해서 사귀었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했어요. 참 많은 걸 주었는데 그 여자는 내게 배신의 상처만 주고 돌아섰어요.” 사랑의 반대를 이별로 여기지 못하고 배신으로 여기는 탓일까요? 그는 이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단념한 듯 보입니다. 이 역시 내게는 안타까운 인식으로 보입니다.

 

나 역시 첫사랑과 관련해 유감스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녀가 내게 이별을 통보하던 날부터 반년이 다 되도록 나는 처량하고 노엽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상처가 아무는 데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훗날 생각해 보고 내 처량함과 노여움과 고통스러움의 본질은 그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섭섭함과 애틋함보다는 그녀가 약속과 신의를 저버렸다는 배신감이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어느 유명한 영화의 대사처럼 사랑에 대한 나의 무의식은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신념 같은 것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려서부터 그때까지 읽었던 문학과 시와 다른 책들로부터 나는 사랑은 순결한 것이며 지고지순한 것이라는 관념을 형성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특히 이광수의 <사랑>은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여하튼 내 삶의 방식에는 아직도 의리 앞에 선행하는 것이 없다는 관념이 비교적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 의()가 상충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경우 여전히 나는 의() 쪽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는 불순(不純)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의()와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인간 행위요 가치임을 깨치게 된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미는 누구도 불의한 자식에게 인륜과 질서에 대한 의를 저버렸다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요 며칠 나는 우리 사회에 사랑은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균형감 있는 동화와 소설과 에세이, 만화 등이 더 많이 생산되고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청소년기에 접하는 텍스트와 이미지에는 사랑이 의리와 혼동되어 오직 한 사람으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종결되어야 한다는 이념에 가까운 메시지가 넘칩니다. 그 결과 그런 이미지와 메시지를 무의식으로 받아들이고 신념으로 굳힌 청춘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랑의 파국을 이별이 아닌 배신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빚어내고 겪어내는 불행이 제법 많은 듯합니다. 데이트 폭력의 큰 원인 한 줄기도 그런 인식에서 연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꽃과 나비가 이렇게 저렇게 교류하듯, 미생물과 나무들의 뿌리가 상생과 나눔을 여차저차 실험하듯 사랑의 교제 역시 그런 이미지로 인식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청춘들이 더 많은 존재들을 사귀면서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일으켜주는 결을 가진 상대를 탐험하는 첫 관문이 첫사랑이라는 점, 이후 여러 관문을 거치며 마침내 그 중에 가장 잘 맞는 결의 사람을 찾아내어 가약을 맺고 함께 무늬를 만들어가며 오래오래 살아가는 것이 사랑으로 이룰 수 있는 기쁨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텍스트와 그림들이 생산되고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순정만화의 이미지를 폐기하는 그 불순함이 오히려 이별을 배신으로 치환함으로써 겪게 되는 불행을 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순수를 잃은 것인가요? 이제 너무 불순해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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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숲 8월 인문학 공부모임 안내

 

얼마 전 누군가가 당신과 나를 개와 돼지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백성으로 사는지, 시민으로 사는지, 내 삶과 이 사회와 국가의 주인으로 사는지, 예속된 존재로 사는지, 근대 이후 등장한 시민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장했는지, 우리의 헌법은 우리를 무엇이라 규정해 주고 있는지, 우리가 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부정의의 실체는 무엇인지 등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과 문제의식을 담아 8월 인문학 공부모임을 아래와 같이 준비했습니다.

 

1. 이번 공부를 이끌고 강의해 주실 선생님은

법조인입니다. 하지만 더 없이 편하고 균형감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한 강의로 유명하신

최강욱 변호사 입니다. 참여자들과 함께 위에 제기한 문제의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최강욱 변호사 소개

: 서울법대, 동 대학원 법학과 졸업. 전 국방부 수석검찰관, 대한변협 인권위원, 민변 사법위원장 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한국투명성기구 이사, 뉴스타파 자문위원)

 

2. 강의 제목은 <법과 인권, 그리고 정의>입니다.

 

3. 일자 : 201686() 15:00 ~

 

4. 상세 안내 및 신청 : 여우숲 홈페이지(www.foxforest.kr) ‘여우숲 소식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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