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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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내가 아직 글도 모르고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일 때 정희성 시인이 한 신문에 <숲>이라는 시를 기고했습니다. 그 시는 1978년 ‘창비’에서 발행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집에 실려 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그 시, <숲>을 참 좋아합니다.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출처를 명확히 하고 여기 전문(全文)을 옮겨 보겠습니다.
숲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으면서도 숲을 이루는데, 인간으로 사는 당신과 나는 왜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살아가면서도 숲을 이루지 못하는가 묻고 있는 저 시는 내가 숲을 텍스트로 삼아 나의 갈 길, 인간의 갈 길을 참구하는 데 있어 늘 염주나 묵주 같은 노릇을 하고 있는 시입니다.
당신도 고독이 싫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하지만 다시 그 사랑으로 인해 고독해 진 적이 있겠지요? 당신도 혹 숲처럼 푸르고 깊고 다채롭고 향기로운 주변을 만들고 싶어 여럿이 무엇인가를 도모하였지만 다시 그 도모 때문에 부딪히고 깨지고 마침내 메마르고 진력(盡力)난 적이 있는지요? 나는 그러해서 저 시를 화두처럼 붙들고 살았습니다. 풀과 나무가 메마른 땅에서 시작해서 끝내는 촉촉하고 그윽한 숲으로 깊어가는 그 비밀스러운 원리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아낸 이 은미한 이야기의 전체 생각은 언젠가로 작정하고 있는 책을 통해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다만 가장 기본적인 지점에 대한 나의 생각 한 가지만을 전하겠습니다. 당신과 내가 만나 숲이 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당신과 나 둘 중 한 쪽이, 아니면 둘 다 아직 각자 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로 만나서 일 것입니다. 제 삶에 주인이 아닌 생명이 숲의 일원을 이루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를 노예로 삼아 제 삶을 지탱하려는 존재 역시 숲에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주인으로 섬기며 살려는 노예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니 사랑해서 고독해지지 않고 사랑을 통해 숲을 이루고 싶다면 어느 시인의 오래된 시구처럼 ‘홀로 선 둘’이 만나야 할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
여우숲 8월 인문학 공부모임 안내
얼마 전 누군가가 당신과 나를 개와 돼지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백성으로 사는지, 시민으로 사는지, 내 삶과 이 사회와 국가의 주인으로 사는지, 예속된 존재로 사는지, 근대 이후 등장한 시민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장했는지, 우리의 헌법은 우리를 무엇이라 규정해 주고 있는지, 우리가 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부정의의 실체는 무엇인지 등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과 문제의식을 담아 8월 인문학 공부모임을 아래와 같이 준비했습니다.
1. 이번 공부를 이끌고 강의해 주실 선생님은
법조인입니다. 하지만 더 없이 편하고 균형감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한 강의로 유명하신
최강욱 변호사 입니다. 참여자들과 함께 위에 제기한 문제의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최강욱 변호사 소개
: 서울법대, 동 대학원 법학과 졸업. 전 국방부 수석검찰관, 대한변협 인권위원, 민변 사법위원장 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한국투명성기구 이사, 뉴스타파 자문위원)
2. 강의 제목은 <법과 인권, 그리고 정의>입니다.
3. 일자 : 2016년 8월 6일(토) 15:00 ~
4. 상세 안내 및 신청 : 여우숲 홈페이지(www.foxforest.kr) ‘여우숲 소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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