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2016년 8월 5일 07시 42분 등록

남해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잡지에서 우연히 본 남해 여행기에 마음을 빼앗겨 그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남해는 저희 집에서 매우 먼 곳입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는데 도착해 보니 점심 먹을 때가 다 되어 있더군요. 남해에서의 첫 끼니는 잡지에서 추천한 맛집의 대표 메뉴 멸치회무침이었습니다. 저는 비린 음식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닌데 멸치회무침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내장과 뼈를 발라낸 멸치살을 각종 야채와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리니 바다의 맛이 났습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은 이때 쓰는 것이겠지요? 남해는 작은 섬이지만 풍광은 근사했습니다. 어딜 가든 바다와 산이 공존하고 신선한 바다 먹거리가 가득했습니다. 섬의 곳곳을 누비며 그리로 가길 잘 했다는 싶었습니다. 하지만 폭염특보 탓에 여유있게 걸으며 구석구석 살펴볼 수 없어 아쉬었습니다.


독일마을, 원예예술촌, 유배문학관, 노도 서포 김만중 유배 초옥, 이락사와 이순신 영상관 등등을 갔었지만 가장 좋았던 곳은 금산 보리암이었습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 보광사. 원효대사가 초당을 짓고 수행하다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후 절을 지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곳에서 관음보살에게 소원을 빌면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태조 이성계도 이 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건국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태조는 기도를 하면서 온 산을 비단으로 둘러주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산 이름에 ‘비단 금()’자를 써서 금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태조가 백일기도를 한 장소가 있습니다. 저도 현장(?)을 목격하고 저의 간절한 소원을 빌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보리암에서 내려다 보는 금산은 절경이었습니다. 산 위에는 산신령이 탈 법한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산 아래에는 잔잔하고 광활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기암괴석과 어울리는 절의 풍광과 구름을 가르며 부는 세찬 바람이 마음 속 먼지를 티끌 하나 없이 날려주는 듯했습니다. 


IMG_1470.JPG


이번 휴가 내내 저와 함께 한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신예작가 조조 모예스가 지은 <미 비포 유>입니다. 성공한 기업가이자 열정적인 청년인 윌은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환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일하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자 루이자는 얼떨결에 윌의 간병인이 되지요. 어둠으로 침참했던 윌은 루이자의 밝은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루이자는 윌을 만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지죠. 하지만 결말은 새드 엔딩입니다. 윌이 존엄사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되거든요. 윌이 떠난 후 루이자는 그의 편지를 받습니다.

"당신 안에는 굶주림이 있어요. 두려움을 모르는 갈망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당신도 그저 묻어두고 살았을 뿐이지요.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고래들하고 수영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대담무쌍하게 살아가라는 말이에요. 스스로를 밀어붙이면서. 안주하지 말아요."


휴가의 마지막 일정은 친정 방문이었습니다. 친정 부모님과 하루밤을 보내고 다음 날, 요양원에 계시는 외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외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갈하게 빗어넘긴 쪽진 머리. 작은 꽃이 수놓아진 고운색의 앙고라 니트 카디건. 하얀 고무신과 한복 치마. 하지만 지금의 할머니는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손질하기 편하게 대충 자른듯한 짦은 머리. 잡으면 바스러질 것 같은 외소한 몸. 탁하고 촛점없는 눈동자. '이제 집에 가야지'를 되뇌이는 할머니는 저를 알아보지도 못하셨습니다. 엄마와 제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가득 찼습았습니다. 할머니는 올해 아흔 여섯. 칠순 노인인 외삼촌 부부가 할머니를 모시기 힘들어 하셔서 이곳에 모셨습니다. 엄마는 맨날 눈물 바람입니다. 좋아하던 노래교실도 요즘은 가시지 않습니다. 할머니를 직접 보니 엄마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삶을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장엄한 절경을 바라보면서, 루이자가 새로운 도전을 다짐하는 대목을 가슴 뭉클하게 읽으면서, 저를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흐릿한 눈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삶을 나는 어떻게 채워야할까?' 생각했습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있고 온전한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안 나는 무슨 일에 전념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1인 기업가 재키의 휴가 단상이었습니다. 

      


[알림] 꿈벗 김달국님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잠언시 150편을 남편 김달국님이 쓰고 아내 서정애님이 사진으로 꾸몄습니다. 많은 축하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 공지

 

IP *.35.229.1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예순다섯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휴가단상 file 재키제동 2016.08.05 1425
2655 산 너머 강촌에는, 자전거길이 참 좋더라~ [1] 차칸양(양재우) 2017.05.02 1426
2654 [용기충전소] 쓸모없음의 쓸모 [1] 김글리 2021.09.23 1426
2653 [월요편지 76] 감히, 당신의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1] 습관의 완성 2021.09.26 1426
2652 조르바처럼 書元 2015.08.09 1427
2651 나도 내가 마음에 안 드는데... [2] -창- 2017.03.11 1427
2650 [화요편지]원하는 변화에 이르는 유일한 길 [2] 아난다 2021.09.28 1427
2649 길을 떠나면 내가 보여 file 한 명석 2015.10.14 1428
2648 [용기충전소] 죽음은 특별한 게 아니었네 [1] 김글리 2021.07.23 1428
2647 쉰네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감정읽기 재키제동 2016.05.13 1429
2646 인문 고전 읽기를 위한 7가지 조언 file 연지원 2016.08.22 1429
2645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한 명석 2016.03.02 1430
2644 양면일기 연지원 2015.06.08 1431
2643 인생 전체에서 딱 하나만을 깨달아야 한다면 김용규 2015.08.20 1431
2642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는 법 [1] 어니언 2021.06.17 1431
2641 즐거운 상상이 만드는 행복의 선순환 차칸양(양재우) 2016.03.15 1432
2640 일흔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코칭 재키제동 2016.09.09 1432
2639 인공지능의 시대, 창의성이란?(6편) file 차칸양(양재우) 2016.09.27 1432
2638 [금욜편지 118- 새해 복짓는 3가지 방법] 수희향 2020.01.03 1432
2637 멀리 본 것을 기억할 것 [1] 장재용 2021.03.30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