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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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주말 저녁의 일입니다. 수능을 100일도 남겨놓지 않은 고3의 딸과 그러면서도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사양하고 홀로 공부를 하고 있는 그 딸을 챙겨야 하는 아내, 그리고 마음으로만 둘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는 아비인 내가 마주앉아 모처럼 매운 낙지볶음을 함께 먹었습니다.
아내가 뉴스 하나를 풀어놓았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유명한 여자대학교의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중이래. 이유는 이래.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들을 위한 학위 과정을 열고 일정 기간 공부해서 학점을 받으면 그 대학의 학사학위를 주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거야. 교육부가 세운 그 정책을 그 여자대학이 받아들여서 그렇게 뽑은 사람들에게 학위를 주기로 한 것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농성인 거야. 경찰이 투입되었고 학생들이 연행되고 교수 몇 명이 다쳤다는 보도였어.’
아내의 전언에 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도 농성하겠다.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어떻게 해서 대학을 가는지 생각해 보면 당연히 분노할 만해. 그렇게 쉬운 경로를 열어 준다면 그동안 고생해서 겨우겨우 입학한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불공평해! 당연히 분노할 만해!’ 딸의 의견은 간결하고 단호했습니다.
그말을 듣고 나는 딸에게 조금 실망 섞인 걱정 혹은 논쟁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딸은 나의 걱정과 논쟁의지를 일소시키는 말을 금방 부언했습니다. ‘물론, 저항해야 할 더 근본적 대상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서라도 소위 좋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여기게 만든 세상의 체제겠지. 하지만 당장은 학교 측을 향해서라도 저항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에는 전적으로 동감이야.’
딸의 말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1등이 아니면, 더 나은 대학이 아니면 막 바로 인생의 패배자로 살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끔찍한 사회구조에서는 대다수의 아이들과 부모가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서라도 무조건 소위 좋은 대학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그 끔찍한 사회구조를 향해 저항의 촛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행스럽게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딸은 건강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의 어른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느냐? 저항해야 할 대상에 제대로 저항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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