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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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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8일 22시 45분 등록

타인의 평가

 

우리나라 어느 유명 대학교에 아주 천진하고 유쾌한 심리학교수가 있었습니다.(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올해부터는 교수의 지위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을 팟 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개발한 심리검사도구를 활용해 사람들의 성격과 성향 등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분은 그 도구를 활용, 유명한 정치인과 잠재적 대권 주자들까지도 분석합니다. 특정 정치인이 왜 그만의 독특한 정치행태를 보이는지, 또 그가 정권을 차지할 경우 시민들은 앞으로 어떤 사태를 맞이할지 등도 포함하는 분석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행태를 심리학적으로 분석·설명하는 그분의 검사 및 분석 방법이 대단히 독특합니다.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심리검사도구는 분석대상에게 직접 검사지를 읽히고 그가 검사지의 질문에 답한 결과를 가지고 분석 결과를 도출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대상자에게 직접 설문을 하지 않고도 대상자를 분석하고 설명합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그분의 방법은 이렇습니다. 분석하려는 대상자를 비교적 잘 아는 몇 사람에게 검사지를 주고 분석 대상자의 입장, 그러니까 그분의 표현대로라면 당신이 아는 그 사람으로 빙의해서설문에 답을 하게 한 뒤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간접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작년에는 대통령을 분석하여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이후 공교롭게도 그분은 그 유명 대학교의 교수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논문에 실은 분석 결과가 권력이나 그 주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그것이 교수 재임용에 느닷없는 영향을 미쳤는지, 그 명시적 상관성은 찾기 어렵지만 다만 그렇게 짐작을 하는 시선은 작금 우리 사회의 현실상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그분의 연구방법이 대상 자신의 직접 평가가 아닌 타인의 평가에 의한 간접 검사라는 점에서 독특하지만, 그분은 그것이 매우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결과를 낸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그의 방법이 과학적 타당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특정인들이 보여주는 행태에 대한 그의 심리적 원인 분석과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영장류들를 비롯해 우리 인간에게는 타인의 평가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두 사회적 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실 인문주의자에게 있어 타인의 평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나 평가에 자신을 맞춰 살아내는 삶에 신물이 나고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을 때, 그 동일성 추구에 질식할 것 같은 날이 찾아왔을 때 내게는 새로운 삶에 대한 각성과 추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타인의 평가, 세상이 그려놓은 그림이나 기준 따위는 이제 내 기꺼이 버리마! 이제는 내가 그리는 그림, 그리고 나의 기준으로 살아보리라!’ 그 각성과 추구가 시작되고 기꺼이 행동으로 나섰을 때 비로소 나는 새로 태어나는 하루하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꽂고 혼자 헤드뱅잉을 하던, 생전 처음 머리를 기르고 노랗게 물들이고 파마를 하고 양복을 거부하기 시작한 마흔 살 어간의 내가 바로 그러한 시작이었습니다.

 

그만큼 나는 이제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나는 타인의 평가에 마음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에 속한 인류의 한 명이어서가 아닙니다. 타인의 눈치를 살펴 사회적 관계 능력을 더 잘 갖추고 그래서 더 잘 생존해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보다 온전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내 스스로의 기준에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입니다. 세상이 뭐라고 평가하든 누군가의 처신과 행동에는 저마다의 기준과 사연과 맥락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나를 각성한 어느날부터 나는, 그렇게 나의 기준과 사연과 맥락을 가지고 행동했다고 자신해온 나는 타인들로부터 들려오는 공개적 혹은 비공개적 평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심리학자의 행태분석을 듣다보니 타인들이 나에 대해 공통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어떤 부정적인 모습을 정작 나는 모르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때문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타인의 모든 평가에 일일이 마음을 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 타인의 평가가 때로는 그 평가자가 나를 어떤 형태로든 차지하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심이 아닌 데서 출발한 타인의 평가에 이제는 조금 더 조심스레 귀 기울여볼 생각입니다. 타인의 평가를 거울로 삼아 보다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다면 그 타인의 평가는 얼마나 귀한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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