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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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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4일 11시 20분 등록

 

오인숙, 서울염소, 효형출판, 2015

 

 

남편은 강단 있는 직장인이다. 회사에 구조조정의 강풍이 불었을 때, 관련명단을 제출하라는 상명을 거부하며 나부터 치라고 맞섰다. 회사는 정말 남편부터 해고했다. 아내는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인다. 숨 막히는 제도교육 현장에서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17년차 교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3년만 참으면 그 좋다는 연금이 나오는 시기이다.

 

이어서 딸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로 갔는데 거기에서는 또, 너무도 자유로운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제도권" 교사임을 자각하고 2년 만에 관둔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혹시 우리 사회에 완충지대가 없나? 나는 이 부분이 많이 흥미로웠다). 이 때  남편의 말이 걸작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만 두려고 했는데....”

 

잘 해 나가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남편은 공들인 프로젝트에 실패했을 때 죽음까지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자꾸만 말이 없어지고, 치통과 배탈에 시달렸으며, 옥상에 올라 가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신이 어릴 때 본, 줄에 묶여 동그란 원 안에서만 움직이는 염소 같다고 한다.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놓아준 것은 아내의 눈보다 카메라가 먼저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리를 놓고 보니, 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였다. (이 책은 쌍둥이로 태어난 딸들을 찍기 시작해서 점차 남편으로 옮겨간 저자의 사진집이다)  가족은 3개월간 배낭여행을 하며 온갖 부대낌을 통해 여행하는 법을 배워 나가며, 남편은 시골집을 사서 수리하며 그동안 힘들게 버텨 온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해방구를 삼는다. 남편은 다시 새 직장으로 돌아가고, 저자는 쉬지 않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처음엔 집사람이 자기 사진 욕심에 자꾸 나를 찍는가 보다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다 받아 적는 거예요. 울컥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몸을 대주기 시작했어요. 인자 찍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한번 해보라고.”

 

 

아내의 사진 전시회에서 남편이 한 인사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물려 받은 것 없는직장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친근감과 신뢰를 느낀다. 생활인으로 피해 갈 수 없는 온갖 문제에 출렁이며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역할이 아니라) 부부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 여보, 당신.... 이라는 호칭 대신 인숙아, 종호야!”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데서 느껴지는 평온함이 마냥 따사롭다. 더군다나 그것을 사진이라는 창조물로, 성과물로 승화시킨 데 박수를 보낸다. 이것이야말로 서울의 숱한 염소들이 스스로 줄을 끊고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 아닌가! 새 직장으로 출근하며 남편은 넥타이 대신 삭발을 하고 나간다. 이제 더 이상 사회의 잣대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이다. 저자의 사진이 참 좋다. 그야말로 이야기가 들어있다.

 

도서관에서 보고 난 뒤 아들의 생일선물로 사서 건넨다. 아들도 사진을 즐겨 찍는지라 이런 사진을 찍고, 이런 가정을 이루렴!” 이라고 썼다. 이만하면 최고의 찬사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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