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 명석
  • 조회 수 116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6년 8월 24일 11시 20분 등록

 

오인숙, 서울염소, 효형출판, 2015

 

 

남편은 강단 있는 직장인이다. 회사에 구조조정의 강풍이 불었을 때, 관련명단을 제출하라는 상명을 거부하며 나부터 치라고 맞섰다. 회사는 정말 남편부터 해고했다. 아내는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인다. 숨 막히는 제도교육 현장에서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17년차 교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3년만 참으면 그 좋다는 연금이 나오는 시기이다.

 

이어서 딸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로 갔는데 거기에서는 또, 너무도 자유로운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제도권" 교사임을 자각하고 2년 만에 관둔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혹시 우리 사회에 완충지대가 없나? 나는 이 부분이 많이 흥미로웠다). 이 때  남편의 말이 걸작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만 두려고 했는데....”

 

잘 해 나가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남편은 공들인 프로젝트에 실패했을 때 죽음까지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자꾸만 말이 없어지고, 치통과 배탈에 시달렸으며, 옥상에 올라 가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신이 어릴 때 본, 줄에 묶여 동그란 원 안에서만 움직이는 염소 같다고 한다.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놓아준 것은 아내의 눈보다 카메라가 먼저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리를 놓고 보니, 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였다. (이 책은 쌍둥이로 태어난 딸들을 찍기 시작해서 점차 남편으로 옮겨간 저자의 사진집이다)  가족은 3개월간 배낭여행을 하며 온갖 부대낌을 통해 여행하는 법을 배워 나가며, 남편은 시골집을 사서 수리하며 그동안 힘들게 버텨 온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해방구를 삼는다. 남편은 다시 새 직장으로 돌아가고, 저자는 쉬지 않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처음엔 집사람이 자기 사진 욕심에 자꾸 나를 찍는가 보다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다 받아 적는 거예요. 울컥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몸을 대주기 시작했어요. 인자 찍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한번 해보라고.”

 

 

아내의 사진 전시회에서 남편이 한 인사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물려 받은 것 없는직장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친근감과 신뢰를 느낀다. 생활인으로 피해 갈 수 없는 온갖 문제에 출렁이며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역할이 아니라) 부부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 여보, 당신.... 이라는 호칭 대신 인숙아, 종호야!”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데서 느껴지는 평온함이 마냥 따사롭다. 더군다나 그것을 사진이라는 창조물로, 성과물로 승화시킨 데 박수를 보낸다. 이것이야말로 서울의 숱한 염소들이 스스로 줄을 끊고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 아닌가! 새 직장으로 출근하며 남편은 넥타이 대신 삭발을 하고 나간다. 이제 더 이상 사회의 잣대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이다. 저자의 사진이 참 좋다. 그야말로 이야기가 들어있다.

 

도서관에서 보고 난 뒤 아들의 생일선물로 사서 건넨다. 아들도 사진을 즐겨 찍는지라 이런 사진을 찍고, 이런 가정을 이루렴!” 이라고 썼다. 이만하면 최고의 찬사가 아닐는지?

IP *.153.200.10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56 아마추어 정신, 순수한 열정의 마음가짐 [1] 옹박 2017.03.06 1170
3055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미국인이 사랑한 캥거루 yellow tail 2 file [2] 알로하 2019.06.23 1170
3054 가난한 결혼, 그리고 돈을 모은다는 것(2편) [1] 차칸양(양재우) 2017.07.11 1171
3053 지배하지도 지배받지도 않기 위하여 김용규 2016.04.08 1172
3052 <엄마의 글쓰기> 두 번의 출간 지연을 겪으며 [2] 제산 2017.06.05 1172
3051 화장실에서 겪은 자비 2 김용규 2016.11.25 1173
3050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 file [2] 알로하 2019.09.08 1174
3049 [목요편지]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하다 [3] 어니언 2021.01.14 1174
3048 [화요편지]불확실성을 푸는 유일한 열쇠 [2] 아난다 2021.11.30 1175
3047 우리가 '흙수저'라고? - 세번째 이야기 [4] 제산 2017.03.13 1177
3046 딴짓, 사랑, 자유 [1] 장재용 2020.03.31 1177
3045 예순한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상반기 결산 재키제동 2016.07.01 1178
3044 당신과 함께 ‘선운사’ 한번 목청껏 소리높여 불러 봤으면 [4] 차칸양(양재우) 2017.04.11 1179
3043 점심이 속도였다면 저녁엔 정성을 차려내라 이철민 2017.06.15 1179
3042 [일상에 스민 문학] -바람의 빛깔 [4] 정재엽 2018.03.21 1180
3041 [라이프충전소] 강의갈 때 꼭 여행음악을 듣는 이유 [2] 김글리 2022.11.18 1180
3040 여든여섯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완벽함에 이르는 길 재키제동 2017.01.20 1181
3039 [용기충전소] 운을 불러오는 법 [2] 김글리 2021.12.24 1182
3038 [월요편지 129] 퇴사 신호들 습관의 완성 2022.11.27 1182
3037 물들이려 하지 마라 김용규 2016.04.29 1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