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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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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6일 00시 04분 등록

 

전북 순창. 군립도서관의 강연 초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인구가 3만 명밖에 되지 않으니 내 고장 충북 괴산보다도 작은 군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가 세 개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군에는 겨우 하나의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우리 군에는 군이 설립한 도서관은 아예 없습니다. 다 낡고 허름한 건물과 시설에 장서도 별로 없어 아이들이나 군민으로부터 사랑이라곤 전혀 받지 못하는 공공도서관이 하나 있을 뿐이지요.

 

군이 설립한 도서관은 크지 않았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웠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약속한 저녁 식사 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문화관광과를 책임지고 있는 과장과 지역 문인협회장 등이 마중을 하고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얼마나 이 도서관의 운영에 관과 민이 함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군수는 올해를 문화융성의 해로 선포했고, 문화 융성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확충하고 활성화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했습니다. 올해 순창군은 영화관과 미술관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광주로 나가서 놀던 청소년들이 방학 동안 읍내에 머물며 영화관이 매진 행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함께 식사한 고등학교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도서관이 활성화되면서 PC방을 전전하던 아이들의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고 했습니다.

 

군립도서관은 올해만 700여회의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준비했고 절찬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의 한 프로그램으로 내게 총 3회에 걸친 강연을 부탁해 왔던 것입니다. 2층의 강연장을 둘러본 뒤 예의 그렇듯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담배 한 대를 피고 싶었습니다. 도서관 뒤 안을 거쳐 밖으로 나왔습니다. 근대를 품고 있는 양식의 가옥과 건물들이 좁고 긴 골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골목 어느 지점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오래되었지만 익숙하고 정겨운 풍경을 따라 시선을 주다가 오래된 가옥의 대문 위에 걸린 간판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금산여관

반듯한 네모 모양의 나무 판자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검푸른 색 페인트를 써서 한글로 눌러쓴 간판이었습니다. 하얀색 배경 페인트의 일부 구석은 제멋대로 일어서 있었고 글씨의 일부도 슬며시 지워져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70년대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간판 아래 대문은 반쪽만 열려 있었습니다. ‘여관인가 여인숙인가?’ 호기심이 일어 슬며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대문 안쪽 벽에 붓으로 눌러쓴 제법 긴 글이 하얀색 벽을 시처럼 채우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더욱 커져 슬며시 안쪽으로 고개를 드밀었습니다.

 

‘-반대-

가고싶어 / 가는 길이니

 

어두워도 / 돌부리에 넘어져 / 피가 흘러도

툴툴 털고 씨익 웃으며 /걸어가리라.

가고싶어 가는 길이니.

 

넘덜네가 안간다 / 돌아서던 길이라 / 분명 외로울 터이지만 / 난 가야지

가고싶어 / 가는 길이니

이천십사년 오월 금산여관의 반대를 겪으며 씀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강연 시간이 급해 더는 살피지 못하고 강연장으로 들어갔고 두 시간을 기쁘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인문정신에 대한 이야기로 1강을 마무리지으며 나는 군민들에게 저 반대라는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살고 싶은 삶의 그림을 그리고, 그 삶을 향해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인문정신인가 강조했고, 이 고장에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니 얼마나 자부심을 가질만한 곳인가 역설했습니다.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금산여관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여관이었고 순창은 고추장보다 금산여관이라는 어느 여행자의 글을 비롯해 많은 여행객들의 칭송이 쌓여 있었습니다. 두 번의 기회가 더 있으니 나는 금산여관을 더 깊게 느끼고 순창의 또 다른 인문주의자들을 만날 날이 있는 셈입니다.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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