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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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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8일 16시 09분 등록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어디에 소속되어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내 기질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삼십대 중반에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이 갖는 목표지향성과 유연하지 못한 규칙과 어쩔 수 없는 경직성을 나는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은 내가 소속된 조직에 나를 온전하게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내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내가 조직에 소속되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나는 누구보다 조직의 목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를 혹사하기 일쑤였고, 조직의 목표에 저해가 되는 요소들에 대해 단호하고 또한 엄격한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군인일 때는 정말 철저한 군인이 되었고 회사원일 때는 정말 철저한 회사원이 되었으며 CEO일 때는 그 누구보다 엄중한 대표가 되는 내가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조직성에 인간성을 빼앗기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이던가요? 누군가 한반도와 우리 민족을 강점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조직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인간성을 놓치고 조직성을 일상의 가치로 삼는 순간 그 스스로 이미 무서운 압제자의 하수인이 됩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마취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조직을 위한 일이다. 조직의 목표를 위해 나는 복무한다.’ 나치의 조직원이 그랬고 모든 이념 지상주의 조직의 조직원들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 근거를 정당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권력의 부당한 지시를 처음 받아들고 그 권력의 구조에 소속된 조직원의 처음은 어떨까요? 아마도 인간성에 고이 깃든 양심, 시비지심(是非之心)이 그를 괴롭히겠지요. 하지만 일신과 가족의 안위를 떠올리다가 차츰 그것에 순응하게 되고 그것을 반복해 가면서 조직성이 인간성의 자리를 영구히 훔치는 순간을 통과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그는 참으로 위험해지지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정보도를 조직의 목표로 하는 언론사에 어느 날부터 막강한 힘의 압력이 들어올 때 언론고시를 통과할 정도로 공부를 잘 했던 그가 그 부당함을 못 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검사가 된 사람 역시 비슷한 상황을 처음 만났을 때 사법고시를 통과할 정도로 법을 열심히 공부한 그 사람이 그 부당함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을 것입니다. 또한 기업이건 공직이건 우리나라처럼 투명성이 덜 발달된 문화의 상태에서는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 중에 인간성과 조직성이 충돌하는 첫 지점을 만나기 쉽습니다. 건강한 인간성의 응집이 조직성으로 확장되지 못한 사회와 문화는 누구나 잠재적으로 조직성이 인간성을 잠식하고 덮어버리는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여건인 것이지요.

 

살아온 세월동안 나 역시 이와 관련하여 작지만 몇 개의 부끄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나는 꽤 예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직성에 인간성을 빼앗기는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잘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게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지는 말아주십시오. 그저 나는 나의 방식으로 그 무서운 일을 피하며 살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래도 정녕 궁금한 분이라면 차라리 김제동씨에게 물어봐주세요.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나름 훌륭한 방법으로 자신을 빼앗기며 살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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