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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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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2일 16시 13분 등록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전도유망한 신경외과 의사가 있었다. 아버지, 형, 삼촌이 모두 의사였지만  의학이 아닌 영문학을 전공하며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지 탐구하는 진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고 믿었으며, “모든 학문 분야란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을 가졌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의학대학원으로 방향을 틀어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간다. 아마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열의가 강했던 것 같다. 한 세기 전에 살았던 시인 월트 휘트먼이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한 것을 발견하고 졸업 논문을 썼으니 말이다. “의사만이 진정으로 ‘생리적. 영적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는 휘트먼의 말에서 그의 관심사를 짐작해 본다.



모든 것이 무리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의과대학원을 나와 7년 과정의 레지던트를 거의 마쳐 가는 시점이었다. 같은 의사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으며, 단지 신경외과 의사가 아니라 신경과학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으며, 스탠퍼드 대학에 임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바로 그 시점에서 그는 폐암 선고를 받는다. 36세였다. 결국 그는 22개월 간의 투병 끝에 사망한다. 그의 짧은 회고록과 투병기를 담은 책 <숨결이 바람될 때>는 그의 아내가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 책은 어떤 소설보다 드라마틱하고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강렬하다. 의사가 자기가 내린 처방대로 진료를 받는 환자의 고통을 온전히 알지는 못하듯이, 리얼은 어떤 허구보다 진실하여 독자의 마음을 강타하기 때문이다. 20년간 의사로 일한 다음 20년은 작가로 살고 싶었다는 그, 폴 칼라니티가 오래 살았더라면 흔치않은 경험을 한 문필가가 탄생했겠다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은 탁월하다. 제왕절개 수술을 참관했던 장면을 묘사한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담당의는 근육을 덮은 흰색의 질긴 배곧은근 근막을 과감하게 가르고, 손으로 근막과 그 밑의 근육을 분리한 뒤 멜론처럼 생긴 자궁을 노출시켰다. 이어 자궁을 절개하자 태아의 작은 얼굴이 나타났다 다시 핏속으로 사라졌다. 담당의는 자궁에 손을 넣어 보랏빛이 감도는 두 아기를 꺼냈다. 간신히 꾸물거리는 아이들은 마치 눈을 붙여놓기라도 한 것처럼 꼭 감고 있었다. 둥지에서 너무 빨리 떨어진 조그만 새들 같았다. 반투명한 피부 사이로 뼈가 보이는 태아들은 아기라기보다는 아기의 밑그림처럼 보였다.



어느 누가 그처럼 맹렬하고 전방위적으로 인간에 대해 탐구할 수 있을까?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익살스럽게 문학적 초월을 발휘하는 그를 보니 “전인”에 가까웠던 사람의 가혹한 운명이 가슴 아프다. 그는 화학치료를 받기 전에 정자를 냉동해 두었다가 딸을 낳는다. 그 딸 케이디가 자기 얼굴을 기억할 때까지 만이라도 살기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딸이 8개월 때 사망한다. 그는 자신의 육필원고가 어떤 형태로든 출간되기를 바랬다고 한다. 목숨은 사라질지라도 글은 남는 것이기에.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에 심취했던 시절부터 이어졌을 질문은 신경외과 의사가 되면서 좀 더 치열하고 급박해진다. ‘복숭아빛을 띈 뇌 주름’을 2밀리미터만 더 깊이 자르면 환자가 락트인 증후군(locked-in syndrome)에 걸려 목 아래로 전신마비가 되는 현장을 집도하던 그가,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선택한 것은 연구실이 아니라 문학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넓은 지평선에서 나는 공허한 황무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계속 글을 써 내려 가야 할 빈 페이지였다....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 준 건 문학이었다.



결국 그는 중간에 잘려나간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한 셈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딱 1년 뿐이라면 책을 쓸 것이라는 대목에서 숙연해진다. 나도 그럴 꺼면서.... 내게도 쓴다는 작업이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 몸짓이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남은 것처럼 구는 내가 놀랍다. 운명의 장난이든 아무런 맥락도 없는 우연의 조작이든, 갑자기 무대의 불빛이 꺼지는 일을 당하기 전에도 깨어 있어야겠다. 그가 꺼져가는 생명의 귀한 시간에 책을 쓴 이유 중에는 우리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을 테니까.






*****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공지 *****


1. 토크쇼 안내 <재키가 만난 구본형의 사람들> 여덟 번째 시간
토크쇼 <재키가 만난 구본형의 사람들>의 여덟 번째 시간이 오는 10월 14일 금요일 저녁 7시 반에 마련됩니다. 이번 초대손님은 AL 문화기획의 대표이자,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이기도 한 수희향 대표입니다. 그녀와 나눌 주제는 <성공하는 1인 지식기업가의 길>로써, 실제 1인 지식기업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를 통해 1인 지식기업가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볼 예정으로,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http://www.bhgoo.com/2011/813034


2. 경제/인문 공부! <에코라이후> 5기 모집 안내
변화경영연구소 4기 차칸양(양재우) 연구원이 진행하는 경제/인문 공부 프로그램 <에코라이후> 5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불황의 시대를 맞아 더 이상 경제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한 다리로만 중심을 잡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는 기본입니다. 기본이 흔들리면 삶은 더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1년간 경제에 대한 모든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 도전해 보세요.
http://www.bhgoo.com/2011/812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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