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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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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7일 23시 38분 등록

 

지난 주 정의에 관한 이야기 1편을 편지로 올리고 난 후 일주일, 그 사이 이 나라에는 국가 최고 통수권자와 관련한 경악할 소식이 폭로되었고 그 소식에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낀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도처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올리는 속편의 글이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주 편지를 받은 한 독자로부터 분노에 찬 답장을 받아 둔 상태였습니다. 답장을 주신 분은 개인적으로 너무도 부조리하고 참담한 상황을 겪었고 그것에 대해 여기 저기 항의했으나 법으로는 자신이 경험한 고통에 대해 그 가해자를 벌할 수 없어 더욱 절망스러운 상황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이래저래 한심하고 안타깝고 처참한 심정으로 글을 이어보겠습니다.

 

지난 편지에 등장한 한 수강자는 각자의 사정이 있었으므로 누군가의 옳지 못한 처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내가 이 수강생 중 누군가를 은밀하게 성적으로 추행하거나 폭행했다고 할 때, 그것도 나의 욕망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므로 양해될 수 있는 것인가요? 묻자 그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라고 대답했다.’고 일러드렸습니다. 그리고 당신께 물었습니다. ‘당신이 나라면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이 주제의 실화적 결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전제하며 되물었습니다. “이건 그저 예를 드는 것입니다. 부디 오해는 하지 마시고 다만 진지하게 생각해서 대답해 주세요. 내가 당신의 부인을 강제로 추행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증거가 남지 않도록 은밀하게 말입니다.” 그는 이 질문에 이입된 듯 했습니다. 아주 잠깐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서야 작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말을 이었습니다. “개인적 사정을 살펴 모든 이의 행동이 이해될 만하므로 정의 따위는 없는 것이라가 아니라, 정의는 거기 어디쯤에서 출발하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겪을 수 있는 부당과 고통이 바로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점 말입니다. 법은 바로 그 지점을 헤아려 각 주체가 지키며 살아가야 할 최소한의 무엇을 정한 것으로 나는 이해합니다.”

정의 따위는 없다고 호기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던 그는 대략 그쯤에서 동의를 표하였고 나는 준비한 흐름대로 강의를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단숨에 고치거나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몇 날 동안 이 나라를 장악한 뉴스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 정의에 대한 시선이 나 같은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라서 여전히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정의는 도대체 어디서 싹트는 것일까요? 나는 크게 두 가지에서 그 씨앗을 찾습니다. 하나는 부끄러움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의 응집과 발휘입니다. 먼저 부끄러움은 개인 정의의 출발 지점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은 정의와 함께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사정과 욕망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다른 생명과 달리 우리가 인간인 것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여서 살다가 실수를 범할 수 있지만, 그 실수조차 스스로 부끄러워 버거워할 줄 알 때 그는 자신에게 조차 준엄해지는 사람이 됩니다. 대학 교수와 정치인, 또는 어떤 사회적 명망가들이 성희롱이나 추행, 부정의한 행동 등으로 피소되거나 추문에 휩싸였을 때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토로하고 반성하고 사죄한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유명 작가와 아티스트, 시인 등이 같은 혐의로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근신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며 그나마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평소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작가가 될 수 없고,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모멸감과 수치심, 분노를 느꼈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면서도 그 폭로를 받아든 사람들이 정직하게 사죄하고 모든 기득과 우월의 조건을 내려놓는다는 발표를 읽으며 그나마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편지가 길어지는군요. 집단과 사회의 측면에서 정의는 분노의 응집과 발휘속에 그 씨앗을 숨기고 있다는 나의 생각은 다음 편지로 이어가겠습니다. 가을의 절정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한 날들입니다. 그대 부정의에 분노하는 날들에 그래도 저 찬란한 가을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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