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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9일 00시 00분 등록

걷다보면 생각도 사념도 바람 꽃잎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세상일을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지를 재촉하는 와중 신과 나 대면 속에도 번뇌는 꼬리를 물어 이어집니다. 원망의 대상이 재현되고, 속상한 상황이 되뇌며, 당면한 현실이 밝지만은 않기에 시름의 한숨을 내뱉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진 않습니다. 살아갈 여정과 길. 함께 가야할 동료기에 손을 잡습니다.


시월 아름다운 날. 다시 찾았습니다. 제주도 올레길. 같은 한반도임에도 또 다른 세계의 설렘이 낯선 이방인임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 누군가 묻습니다. 왜 그곳까지 가서 힘들게 걸으시나요. 웃음으로 대답합니다. 좋아서요. 분지 지역에서 자란 터라 넓디넓은 바다를 품으면 절로 신이 나고 끌림에 취합니다.


걷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며 원초적 행위임과 동시에 다른 동물과 차별되게 만드는 고유의 특수성입니다.

무얼 바라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닙니다. 오름을 오르며 턱까지 차오는 숨에 헉헉대고, 뙤약볕 내리쬐는 하늘아래 향할 때 이것을 왜하나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한발을 내밀고 반대편 발을 딛습니다. 타박타박. 내딛는 울림에 땅과 저 자신 하나가 됩니다. 몸으로 전해오는 짜릿함. 자유로움입니다. 나는 이 체감이 참으로 좋습니다. 아쉬운 것 없습니다. 오가는 사람 없는 그 적막함에 속살을 만나 인사를 건넵니다.


아스팔트, 돌밭, 흙길……. 여러 길 갈레 커다란 물웅덩이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어젯밤 무던히 내리던 비의 흔적입니다. 정석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핍니다. 돌아서 혹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합니다. 농부의 밭으로 뛰어 내려가 가로질러 돌담을 애써 기어오릅니다. 길이 그렇듯 인생도 그러합니다.

삶을 겪어온 수레바퀴는 바퀴를 굴립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잠수질하는 해녀, 섬을 만나고 세찬 바람을 맞습니다. 얽매이지 않는 몸과 마음이 가볍습니다. 장시간 걸음에 다리가 묵직할 때쯤 오늘의 목적지가 나타납니다. 충만함에 하루란 늘어진 몸을 말립니다.


걷는 것은 걸어 다님은 내가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자주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입니다. 땀을 흘리고 검게 그을린 얼굴이 징표입니다. 걸어 나감은 앞으로 나감은 전진이요 진보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좌절이요 간절한 염원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어머니. 장기간의 병상생활은 신체 능력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오랫동안 누워있음으로 다리는 어린아이의 것이 되고 근육은 퇴화됩니다. 그렇기에 의사의 충고가 있음에도 그 쇠약한 다리는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 행위인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비참함과 치욕감. 그로인한 제한된 활동범위는 심리적 무력에 결국 인간으로의 존엄성 자체를 무너뜨리게 만듭니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인가요. 나는 이토록 살아있음의 표징인 걸음을 멈추지 않는 걸까요. 온전한 걷기는 주체로서의 확인과 각성을 시켜줍니다.


걷습니다.

그 안에 내가있고 내가 온전히 행합니다.

그곳에 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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