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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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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31일 23시 48분 등록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책만큼은 읽으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매년 독서 목록이 쌓여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수상자의 작품을 다 읽을 수도, 읽을 필요도 없지만) 수상자들이 100명을 넘어선 데다 다작하는 작가도 많다. 반면 나는 1인 독서가이고, 읽는 속도도 느려 터졌다. 이것은 자기비하나 체념이 아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독서 목록이 쌓여가는 원인은 또 있다. 나의 문학 사랑이 스스로 기대하는 만큼 깊지 않을 가능성!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문학보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음이 분명하다. 문학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문학을 제외하고서도 명저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문학만을 사랑하기에는 독서 욕심이 너무 많다.

 

나의 문학 사랑의 깊이 역시 현실 인식이다. 현실 인식은 종종 자괴감을 동반하지만, 열정을 부르기도 한다. (열정(Passion)의 어원에는 고통이라는 의미도 담겼다. The passion of Christ의 뜻이 그리스도의 ‘열정’이 아닌 ‘수난’이듯이.) 읽고 싶어 안달이 난 길고 긴 독서 목록을 지닌 나로서는 절망도 희망도 없이 말한다. “문학 작품 읽기의 최대 적은 독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발표일에 반짝 문학에 관심을 갖는 정도는 아니지만, 문학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은 분명 아니다. (비교조차 민망하지만, 신형철을 보라. 그가 “읽고 쓰는 것이 내 삶의 대부분”이라고 했던가.) 원인 하나 더! 밥벌이라는 실존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미래에 이룰 ‘소원’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실존’에서도 잘 살아내고 싶다.

 

어제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모옌과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잠시 언급되었다. 그때 '동양권 노벨문학상 작품만이라도 틈날 때마다 읽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양’이라는 문화적 동질감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보다 모옌과 야스나리의 소설의 가독성을 높인다. 두 작가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오에 겐자부로까지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은 독서 의무론이 아니다. 노벨문학상이 아니라 부처문학상, 하나님문학상이라 할지라도 독서가 의무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독서 목록은 부담과 의무가 되기 직전까지만 유효함을 잊지 말 것. 그렇지 않을 조짐이 보이면, 목록을 던져버린 후 삶을 생각하고 여유를 회복하고 인생의 목적을 상기할 것.”

 

지혜롭고 자유로운 선택이 삶을 빛낸다. 책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즐거운 독서 생활을 영위하려면 무엇보다 독서 의무론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독서 쾌락론이라 부를 법한 그 비결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각종 추천 목록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기. 고전이든,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든 예외 없다. 둘째, 마음이 동할 때 끌리는 책 읽기. 독서보다 더 잘 즐길 수 있는 여가가 있다면 굳이 책과 놀지 않아도 된다. 셋째, 책을 손에 들었다면 책 속으로 몰입하기. 몰입해야 한다는 규범 명제가 아니다. 몰입할 수밖에 없는 책을 읽자는 실존 명제다. 그럴 수 없다면 둘째 원칙으로 돌아가자. 넷째, 느끼고 깨달은 것을 음미 또는 실천하기. 독서 쾌락을 누렸다면 음미와 실천이 없어도 좋다. 음미와 실천 역시 의무론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에 대한 일종의 매너일 뿐.

 

헤르만 헤세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명작들을 자유롭게 선정하여 일과 후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인간이 생각하고 추구한 것들의 너비와 깊이를 깨닫고 인류의 삶과 심장의 소리에까지 이르는 것”이라 말했다. 인류와 자기 심장의 두근거림을 듣는 독서!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책읽기요, 노벨문학상 수상작보다 중요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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