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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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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9일 13시 35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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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아책방, 요즘 여기저기에서 소개되는 핫플레이스다. 제일기획 부사장을 역임한 카피라이터 최인아 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방을 열었는데....  홍보에 능숙해서인지 인맥이 좋아서인지,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읽은 포지셔닝 덕분인지 초반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번 가 보려던 참에 어제 “남해의 봄날”에서 만든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북콘서트가 있기에 다녀왔다.


선릉역에서 내려 2,3분 걸어가니 어두워지기 시작한 초겨울의 불빛 속에서도 돌연 빛나는,  단정하고 기품 있는 4층 건물이 나타났다. 상자처럼 반듯하고 규격에 맞춰진 효율 위주의 건물들 틈에서 그 건물은, 자기 혼자만 이름을 가진 건물 같았다. 4층에 서점을 앉히다니, 결국 아는 사람만 오라는 얘기지. 그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될 것이었다. 서점에 있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났기 때문이다. 일행으로 보이는 한 떼의 사람들이 줄 서서 책을 사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다들 선량한 교양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지면을 통해 익숙한 내부공간은 참으로 고급스러웠다. 넓지도 좁지도 않게 적당한 공간에 이층까지 탁 트인 천장에는 어디 유럽의 무도회장에 어울릴 것 같이 크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두 개 달려 있는데, 청동빛 뼈대에 반투명한 유리가 이 공간의 럭셔리를 선도하고 있다. 벽면 한 쪽은 높은 천장까지 짜 넣은 책꽂이에 사다리가 달려 있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혹할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맘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안락의자와 푹신푹신한 카페트가 깔려 있는 아담한 2층은 누구라도 이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은 최고급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신간, 그 중에서도 지명도 있는 몇몇 저자의 책 위주로 전시한 것이 아니라, 20대에 맘껏 방황하며, 혹은 마흔에 자꾸 읽고 싶은... 이런 식으로 맞춤정보를 준다고 해서 책을 고를 욕심이 컸는데 책을 읽기보다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공간을 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도 모처럼 왔으니 책 몇 권 건지려고 미간을 좁히는데 이번에는 또, 서가에 꽂힌 책들이 평소에 내가 알고 있는 책들과 달라보인다. 대형서점이나 도서관에 꽂힌 책이 보급판이라면 거기에 꽂힌 책들은 모조리 양장본에 희귀본만 모아 놓은 것처럼, 품격있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순간 내 착시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렇게, 책들은 자신을 알아주고 대접해 주는 사람을 위해 최고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진열대를 한 쪽으로 몰고 의자를 배치하자 순식간에 홀이 사람으로 가득찼다. 100명을 신청받은데다 직원과 주최측 인사까지 있었으니, 계단에도 한 칸에 두 사람씩 나란히 앉을 정도로 사람이 바글거리는 정경에 잠시 울컥 한다. 나도 사람을 모집하는 일을 하는 입장이지만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책방에 사람을 들끓게 한 의지와 반응이 감격스러웠다. 보통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는 책방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 최인아책방이 고마웠던 거다.


이 글의 제목을 “선수들”이라고 붙였다. “선수”란 한 분야의 핵심을 꿰어 능숙하며, 능란함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내 나름의 찬사로서  방송작가 중 꼽으라면  정성주와 노희경, 여행작가라면 오소희와 김영주, MC계에서는 요즘 신동엽의 기량이 무르익은 듯 보기 좋은데,  “최인아책방”이나 “남해의 봄날”, “성심당” 모두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통영으로 자리를 옮겨 로컬주의의 기치를 출간으로 웅변하는 “남해의 봄날”은 남해의 햇살을 독점했다는 시샘이 들 정도로 활발하게 책을 펴내고 있다.


대전 명물 “성심당”은 빵이 맛있는 곳인 줄만 알았지, 대전 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나눔을 실천하며, 진취적인 기업문화를 실현하는 강소기업인 줄은 몰랐다. 본점과 대전역, 백화점 입점 세 군데 매장에서 하루 매출 1억에 직원이 400명이라니 입이 딱 벌어진다. 이북 출신 창업주의 베품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고, 여기에 아들부부가 맛과 지역주의의 가치를 더한 것이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듯하다. “성심당”의 간판격인 튀김소보로가 하나씩 돌려졌다. “성심당”의 안주인은, 자신이 아는 최고의 맛을 우리가 맛보지 못했을까봐 조바심을 냈다. 이 시간 지나면 맛없다고, 프로그램 중간에 빵을 돌린 그 분들의 자세에서 진정한 “선수”가 되는 요건을 훔쳐 본 것 같았다.


가을이라 그런가 독감의 끝이 길어서인가, 요즘 가끔 “이게 전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게 된 연배이니, 이제부터는 진짜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과할 일 만들지 말고, 헤어질 준비하며 그렇게 살아야겠다. 이 귀한 시간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면 그건, 어제의 그 분들이 보여준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을 “명가”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나도 선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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