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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2일 06시 23분 등록

산보중입니다. 아침 공기가 서늘한 것을 보니 가을의 여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계단을 오르는 중 쪼르륵 달려가는 참새 한 마리. 먹는데 정신이 팔려 지켜보는데도 아랑곳 않습니다. 배가 무척 고팠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종종걸음으로 뛰어갑니다. 아스팔트를 나뭇가지를 용수철이 달린 듯 통통대는 모습이 작고 신기합니다.


국민체조를 해볼까요.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몸을 놀리노라면 당시 기억속 성우 멘트, 곡조에 잠깁니다. 국민체조 시작~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실습시험도 쳤었지요. 무던히 반복했던 동작. 그 덕에 지금도 자연스럽게 몸에서 베어 나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콧물 흘리던 꼬마에서 이젠 무릎이 시큰대는 설익은 중년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뿐. 다른 운동은 하질 않더라도 이 체조만큼은 빠뜨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집안에서 하기도 하고 출장지에서는 모텔방 거울 앞에서 용을 쓰기도 합니다. 습관이란 무섭습니다. 특히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힌 동작은 오래갑니다. 거르면 왠지 찜찜하고 몸이 늘어집니다. 화장실 가서 볼일을 보지 못하고 나온 냥 말이죠.


새날 기운을 깊게 들이마시며 아파트 뒷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소담스러운 소나무와 아름드리 꽃들이 조성되어 있는 곳. 짧은 구간이지만 분위기는 여느 숲길 못지않습니다. 대도시 단지 내 작으나마 이런 공간이 있음은 기쁜 행복입니다. 오가는 주민들과도 가볍게 눈을 마주칩니다. 사색과 향유의 길. 산책을 즐겼던 괴테마냥 나도 넌지시 뒷짐을 지어보지만 아저씨 냄새가 폴폴 묻어나옵니다.


곳곳에는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가 놓여 있습니다. 가볍게 근육도 풀고 평소 쓰지 않던 팔뚝에 힘을 줘봅니다. 그러다 나뭇잎 하나가 마음에 담깁니다. 바람에 온통 나부끼고 있는.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다른 잎은 멈추어 요동도 하질 않는데 반해 그 잎만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까닭이 뭘까요. 한 나무 지체에 달린 동일한 구성원임에도 똑같지 않은가봅니다. 바람 골이 녀석에게만 향하고 있던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로 흔들리고 싶었던 건가요.

제주도 올레길 코스의 하나인 송악산 정상 언덕. 그때도 바람이 불었습니다. 육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얼마나 세찼던지 서있는 사람도 휘청거릴 정도였습니다. 그 가운데 갈대밭은 더할 나위 없었겠죠. 앞뒤 몸뚱이 전체가 아릴정도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쓰나미가 밀려오듯 물결이 이어질 때면 속절없습니다. 비틀거리는 그들. 그러매 그들은 바람에 대항하지 않고 온전히 눕습니다. 고요한 또 하나의 바다가 펼쳐집니다.

그 나뭇잎도 그러하였던 걸까요. 다른 잎들과는 달리 자신만 흔들린다는 것이 불만과 때론 불안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그는 바람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닥친 외풍이 그리움으로 남을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단풍이 물들다 못해 이젠 또 다른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생명을 다하고 땅으로 떨어진 녀석들 몸뚱이위로 사람들의 구둣발 흔적은 이어집니다.


우리도 이제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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