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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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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5일 17시 53분 등록

슬퍼 마세요. 나는 고통과 슬픔, 외로움이 없는 곳으로 갑니다. 다만 행복을 누릴 기회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나의 죽음이 여러분께 슬픔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떠나니까요.


삼촌과 숙모의 은혜가 바다처럼 깊어요. 내 어린 시절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의 배려가 없었다면 제 삶에는 또 다른 그늘이 드리워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결혼을 했더라면 두 분께서 저를 키운 보람을 더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에 늘 죄송했어요. 이를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나곤 합니다. 끝내 그 보람을 안겨 드리진 못했네요.

할머니! 할머니께 또 하나의 고통과 슬픔을 안겨 드림이 나를 괴롭힙니다. 딸과 그 딸의 아들을 잃으신 할머니의 비통함을 하늘과 대지가 위로해 주기를 제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기도할게요. 할머니의 저를 향한 신뢰가 저를 여러 번 옳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얘길 강연장에서 하면 몇몇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요.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동생아, 꼭 경찰공무원이 되어서 찬란한 30대를 살아가기를 바란다. 형을 잘 따라주어 고마웠어. "형은 완벽한 줄 알았는데, 전화 받는 건 왜 이렇게 못 하노?" 몇 년 전에 네가 한 이 말은 내게 기쁨이었고, 부끄러움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고맙기만 하다.

OO아, 너와의 만남은 내 삶에 큰 축복이었어. 사랑하는 만큼의 행복을 안겨주지 못해 부끄럽고 나 자신이 원망스럽네. 오해와 격정이 뒤엉켰던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한스럽다. 내게 삶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네가 함께 해 줄지는 모르지만, 마음마저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온 몸을 할퀸다. 내가 진실로 사랑했음을 기억해 주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다시 너를 만날 거야. 그 땐 함께 살자.

어머니! 제가 어머니가 세상을 사셨던 정도만큼 살다가 떠납니다. 만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보다 오래 살기 시작하면서 저는 형언하기 힘든 기분을 느낍니다. 아버지, 어머니보다 오래 살고 있음에서 오는 감정은 두려움과 처연함입니다. 내 인생이 어머니처럼 덜컥 끝날까봐 두렵고, 당신의 삶이 떠올라 처연한 게지요.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엄마 없는 삶이 제 인생에 어떤 그늘을 드리웠는지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있어요.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제 삶은 다른 모양이 되었겠지요. 나는 그 삶이 참 궁금해요. 한 번 뿐인 삶을 엄마 없이 살아서 억울하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엄마를 만나면 그 얘기를 좀 들어주세요. 죽기 전에 단 하루만 엄마랑 지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바보 같은 놈아, 잘 있냐. 내가 눈을 감으면 너를 만날 수 있는 거야? 보고 싶다, 이 자식아! 니가 떠날 때, 마지막 인사를 못해서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고는 있냐? 네가 떠나지 않아도 필멸성을 모르지 않는 나인데, 너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더욱 명징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고통이자 힘겨움이었어. 너를 만나면 욕을 한 바가지 할 거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니, 이 말을 남긴다. 사랑한다, 이놈아! 정말 다시 만나고 싶다.

와우들에게도 마음을 남깁니다.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십년 남짓의 세월이 제 삶에 커다란 위로였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여행하고, 고민했던 날들이 제 부족한 인생의 의미 있는 결실입니다. 나를 찾아주시고, 의미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함께 하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되었네요. 우리가 함께 배운 시간들이 눈앞을 스쳐갑니다. 여러분 덕분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장례가 끝나면 마음이 끌리는 몇 분은 저를 안동으로 데려가 주세요.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다 내 육신의 재를 뿌려 주세요. 누군가가 '삶은 여행', '언젠가는', 'Say it', '막스 리히터의 봄', 'Limbo Jazz'를 순서대로 들려주면 고맙겠습니다. 이 날이 축제가 되기는 힘들겠지요. 그리 말하는 이들의 넉넉함과 낭만을 존경하지만, 내게 죽음은 축제가 아닙니다. 그리 되도록 애쓸 뿐이지요.

여러분과 헤어지는 날, 눈물로 저를 배웅해 주실 분이 계시겠지요? 누군가의 눈물이 제게는 위로가 될 것 같아요. 그 눈물이 이튿날에는 미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래 슬퍼하지는 마세요. 나는 세상 속 일개인에 불과하고, 여러분에게는 앞으로의 삶이 있으니까요. 나의 죽음에서 여러분의 삶을 보기를 원해요. 몇몇 분들이 저와의 사별로 큰 슬픔에 잠길까 걱정입니다. 먼저 떠나서 미안해요. 여러분의 마음과 기억 속에서 동행하고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저로부터 상처와 아픔을 받았던 분들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드립니다. 저의 작은 실수와 부족함마저도 용서해 주셔서 나의 마지막 여정에 평온을 허락해 주세요. 용서는 우리 모두를 위한 희망과 위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 말고는 드릴 것이 없는데. 글이라도 있어 위로가 됩니다. 나는 많은 글을 썼습니다. 세상에 발표하지 못하고 유실한 글들은 나의 큰 고통이자 회한거리였지요. 예술성이든, 깊은 지혜든, 무언가를 창조한 작가이기를 꿈꾸었지만 끝내 잡글만 쓰다 간 글쟁이로 존재했음이 아쉽습니다. 블로그에라도 나의 전모를 공유하지 않은 것이 이제야 불찰로 느껴지네요. 인문주의자로서의 글, 와우리더로서의 글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유실의 불운이 블로그를 덮치지는 못했으니까요. 앞으로는 글로 만납시다.

노무현 대통령님처럼 짧은 유언을 쓰고 싶었는데, 글이 길었습니다. 아쉬움이 많아서는 아닐 겁니다. 인문주의적 사유는 긴 글로 이어질 때가 있거든요.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다만 죽음 앞에서는 미련과 아쉬움이 모두 부질없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삶은 언젠가는 끝난다! 이 말이 제 삶의 마지막 2년 동안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삶이 불쑥(!) 끝나기 전에 많이 웃고, 사랑하고, 더욱 건강하시기를 당부합니다. (연지원 올림)

<앞으로의 삶을 제대로 살고 싶어서 유언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열흘을 살았어요. 절실한 유언장 덕분인지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조금씩 실천했던 열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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