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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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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7일 15시 00분 등록

제현주,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어크로스, 2014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그냥 지나친 프로그램에서 저자는 ‘거짓 장인’이라는 논리를 이끌어낸다. 기예에 가까운 솜씨로 봉투를 접고 드럼통을 굴리는 분들에게 우리가 투사하는 것은 옛 장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 종사함으로써 마침내 업무에 능통하게 된 분들은 참으로 존경스럽지만, 자본주의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즉 시간당 임금으로 보면 그들의 노동은 보통 칭송받지 못하는 종류인 거고, 그들은 자신이 만든 상품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그들의 노동의 성과는 철저하게 기업의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리듬이 아니라 기계의 리듬 혹은 수요의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파편화된 노동, 일의 결과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나온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육체노동자만이 아니다.” 책을 좋아해서 대형인터넷서점 MD가 된 친구는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매출실적을 집계하느라 바빠 전만큼 책을 읽지 못한다. “자동차가 좋아 현대자동차에 취직한 사람이나 스포츠가 좋아 나이키에 취직한 사람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반대편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나도 가끔 오디션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저자는 “타고난 재능이 압박과 자극을 만나 반짝 불타오르는 무대를 목격하는 행운”을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생활의 달인>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K팝스타>에 대해서도 복잡미묘한 감성을 느낀다. 구두를 기가 막히게 닦는 달인에게 찬탄하면서도 애잔함을 느끼듯, <K팝스타>의 어린 열정가들에게 감탄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저자는 열정노동의 한 예시로 오디션 참가자들을 본다. 오디션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할 수 있는데 승자만이 부각되는 점, 또한 오디션에 붙는다고 해도 자칫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구도, 그리고 나의 열정에 대한 평가를 외부의 판관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전제 등이 뒤엉킨다.


이쯤 되면 이 책이 “일”에 대한 책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카이스트에서 석사까지 하고 기업경영 및 투자 분야 전문가로 10년을 일했다는 프로필답게 깐깐하게 “일”에 대한 연구를 파고들어 탁월하게 펼쳐 놓는다. 우리 모두 인지하다시피 이 시대의 노동은 우리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다. 한정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좌절된 자의 탄식 소리가 높다. 그렇다고 해서 일자리를 차지한 사람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 함정이다.


그러나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이자 삶의 태반을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유독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저자의 연구성과인 이 책은 곧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책이 된다.


소비와 생산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살림살이 활동이 늘어나는 것은 탈산업사회가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해법이기도 하다. 3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은 현저히 높아졌고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엄청난 시간이 생산 공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산업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도 환경은 그 시간을 ‘자유’가 아니라 ‘실업’으로 바꿔 놓았다. ... 얼마 남지 않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져 차지한 이는 지키기 위해 고달프고, 차지하지 못한 이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사회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우리에겐 새로운 일의 정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일의 정의는 새로운 ‘소비’의 정의를 가져 오고, 결국 새로운 방식을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돈을 적게 쓰는 삶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욕구를 무작정 줄여야 한다면 그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나는 인간 욕구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욕구를 다른 욕구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욕구를 대체하려면 삶의 다른 배치로 들어가야 한다. 저비용 구조로 자신의 욕구를 재편하고 싶다면 다른 장소와 다른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지,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지가 우리 욕구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다른 종류의 활동을 하고, 다른 종류의 관계를 맺고, 다른 종류의 경험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다른 종류의 욕구가 생길 리 만무하다.  (제현주의 책 중에서)


저자의 잠정적인 대답은 ‘협동조합’이다. 저자도 회사를 그만두고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이끌며, 2년 반 동안 전자책 18종을 만들고, 포럼 등 돈이 될 만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 일을 주된 일로 했다면 사업의 리스크 때문에 힘들었겠지만 열 명의 조합원이 때에 따라 적당히 바통을 넘겨 가며 일하는지라 즐겁게 일하며 노는 조직이 된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전통적인 일- 고용의 바깥에서 새롭게 일을 정의하는 시도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사회적기업 “문화로 놀이짱”의  안연정 대표는 우연히 만들기에 빠지면서 엄청난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자신이  화폐를 교환하면서 사는 삶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술집에 가느니 집에서 모여 요리를 해서 어울리고, 친구의 재능을 빌려 가방을 직접 만드는 등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을 다르게 만들어가고 있단다.


하버드 박사후 과정 이효석은 <뉴스페퍼민크> 사이트를 운영한다. 주요 외신 기사를 골라 번역 요약해서 소개하는 사이트인데  아직 수익은 없지만, 우선 즐겁고 정체성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기꺼이 해 나가고 있다고.


출판연대라는 이름을 내건 ‘절망북스’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멤버 대여섯으로 구성된 느슨한 조직이다. 내키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발행인이 되어 독립 출판물을 펴낸다. <9여친북스> <나의 할아버지는 제주> <사우스이스트 런던에서 일주일을> 등 내놓았다.


<노력금지>라는 책을 펴낸 ‘놀공발전소’ 의 피터 리, 게임회사 설립해 뉴욕에서 20년간 일하다 무언가 빠진 듯한 기분에 2010년 귀국.
“재미는 그냥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 즐거움과는 다른 개념이죠.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 의미 있는 활동을 말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는 밤을 새울 수 있잖아요. 다만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맥락을 알아야 해요.”


간단하게 리뷰를 썼지만 대단한 책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엄청난 독서량과 레퍼런스에서 가져 온 날렵한 문장으로 조목조목 펼치는데 그대로 반할 지경이다.(드라마 ‘밀회’를 분석해 놓은 부분, 번역가 정영목을 다룬 부분, 줌파 라히리의 단편을 가져 온 부분만 봐도 저자의 검색양이 짐작이 간다)  나름 여권주의자인데도 경력과 관심사와 문체를 보고 저자가 당연히 남성인 줄  알았다가 서문에서 여성임을 발견하고 환호했다.  독서에 익숙한 나로서도 처음 접하는 반전이었다. 가슴에서 하트가 마구 발사된다. (책을 중반부터 읽기 시작해서 서문을 제일 끝에 읽었다)  저자가 지독하리만치 깐깐하다는 점이 다르려나 엉성해 빠진 나에게도 요즘 최고의 생각꺼리요 돌파과제인데 때맞춰 읽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뭐가 될지 우선 굴려 보자는 뜻에서 저자의 협동조합 이름은 “롤링다이스”다. 나는 우선 무엇을 굴려볼 수 있을지, 이제껏 알아왔던 그룹, 접촉가능한 얼굴들을 떠올리게 만든 책이다.





*****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공지 *****

1. 토크쇼 안내 <재키가 만난 구본형의 사람들> 재키 &차칸양 편(마지막)
토크쇼 <재키가 만난 구본형의 사람들>의 열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이 오는 12월 9일(금) 저녁 7시 반에 마련됩니다. 이번 초대손님은... 없습니다. 대신 그동안 토크쇼를 운영해 온 주 진행자 재키(유재경)와 보조 진행자 차칸양(양재우)이 마지막 시간을 꾸미게 될 예정입니다. 재키는 <당신의 커리어 GPS를 켜라>라는 제목으로 경력확장 방법에 대해, 차칸양은 <직장인의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최경자) 만드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토크쇼 마지막 편, 많은 분들의 신청과 참여 바랍니다.
http://www.bhgoo.com/2011/814105


2. [출간소식] 『파산수업』 정재엽 지음
변화경영연구소 2기 연구원 정재엽의 책 『파산수업』이 출간되었습니다. 저자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나 무엇하나 부러운 것 없는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파산으로 인한 급격한 몰락을 겪으며 그에게 찾아온 것은 낮에는 은행과 채권자들의 독촉과 압박, 그리고 밤에는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문학과 음악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파산이라고 하는 큰 충격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인생의 수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인생수업을 원하시는 분들의 일독 바랍니다.
http://www.bhgoo.com/2011/813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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