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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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법, 사람에게는 염치
광화문과 전국 주요 도시에 촛불이 밝혀지고 마침내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그리고 그 주변인들이 벌인 이른바 국정농단을 조사하기 위한 국회 청문회가 월요일부터 사흘 내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되었습니다. 짬이 날 때마다 그 중계를 보았는데 참으로 한심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사흘을 보냈습니다.
주요 재벌과 핵심 관계자들의 대답은 철저히 법의 조항 뒤로 숨고 있었습니다. 평소 나는 법이 진실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고 여겨왔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법은, 특히 기득권의 이익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진실의 다툼에 있어 법전에 쓰인 문장들은 그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법의 문장이 모든 것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겠으나 법의 형식성이 지닌 근본적 한계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법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기득과 권력의 편에 선 경우가 허다하여 더욱 그럴 것입니다. 도(道)와 리(理)가 무용해진 현대의 세상에서 법(法)은 근본적으로 그런 한계를 벗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성문법(成文法) 비관론자입니다. 도리(道理)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의 준거 기준은 성문의 법(法)이 아닐 것입니다. 성문의 법은 ‘사람’의 도리를 구하는 이들을 판정하기보다는 이(利)을 구하는 ‘인간’들을 재단하기 위한 것이라 해야 더 마땅할 것입니다. 도리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은 홀로 있을 때나 여럿이 있을 때나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그가 무엇인가를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자신의 ‘양심’인 것입니다. 이상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인간에게는 법, 사람에게는 염치(廉恥)’가 준거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청문회에 등장해 조사를 받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중요한 자리에서 직간접적으로 국정을 주물렀던 인간들입니다. 내 눈에는 어느 한 인간 염치를 아는 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 염치를 알았던 오래된 지식인 두 명을 소개합니다.
먼저 매천(梅泉) 선생입니다. 29살과 33살에 과거에 응시하여 각각 합격했으나 타락한 정관계가 암담하여 출사를 포기한 채 구례의 산골로 내려가 일생을 연구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던 선비 황현 선생이 그입니다. 선생은 56살, 그러니까 1910년 나라가 일제에 강제 병합되자 스스로 자결합니다. 당신은 한 차례도 국록을 먹은 적 없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통감, 살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1905년 11월 이완용 등 을사오적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지연 선생은 <황성신문> 11월 20일자에 이런 논설을 썼습니다. “오호라. 개돼지 새끼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 대신이라는 작자들이 이익을 추구하고, 위협에 겁을 먹어 나라를 파는 도적이 되었으니, 사천 년 강토와 오백 년 종사를 남에게 바치고 이천만 국민을 남의 노예로 만들었으니…… 아, 원통하고도 분하도다. 우리 이천만 남의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청문회를 보고 난 지금 나는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의사, 재벌 경영자 등 소위 이 시대의 선비들에게 “그대들은 언제 ‘사람’이 되려 하는가? 그대들은 법의 조문보다 더 강렬한 준거, 염치를 언제 돌보려 하는가?”라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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