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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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에서 나는 적막에 스스로를 가두는 시간이 값진 시간이 된다고, 우리는 적막 속에서 빛나는 보석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리하여 마침내 일상이 회복된다고 했습니다. 적막은 저절로 한없는 쓸쓸함을 빚어내며 그 쓸쓸함에 흠뻑 젖어 우리는 비로소 삶의 비탄을 말끔히 씻어 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숲에 깃드는 겨울의 적막, 그 적막에 나를 고스란히 맡기는 순간은 그래서 참으로 소중하고 값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적막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간을 대체로 견디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무리로부터 소외되거나 외로움을 겪는 것을 두려워하는 탓입니다.
나는 언젠가 그대에게 ‘외로움에 대하여’라는 글을 써서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이므로 그 질문에 답해주겠다며 썼던 편지였지요. 그때 나는 아마 ‘외로움은 스미지 못하여’ 겪게 되는 감정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별로 외롭지 않다고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숲에 늘 스며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댔을 것입니다.
조금 더 살며 생각해보니 내가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나 역시 이따금 외로운 나날을 겪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고백하건대 내가 늘 저 숲에 스미어 사는 것도 아니었고 오직 저 숲에 스미어 있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실존적 고독이 또한 나를 엄습하는 날들 역시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외로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수정된 결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결론 역시 잠정적인 것이겠지만요.
‘인간은 모두 외롭기 마련입니다. 특히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더더욱 외롭기 마련입니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려고 애씁니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나, SNS 같은 첨단의 방식으로 연결망 속에 접속해 있으려 노력하는 것, 일반적 질서나 규범으로부터 비켜서 있는 것을 회피하려는 마음과 행동 등이 그런 예이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실존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래서 더더욱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을 좇아 살아도 외롭고, 반대로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살려 노력해도 삶은 외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살아도 후자의 삶을 택하고 그것에 수반하는 외로움을 온전히 감당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외로움이야말로 실존적 삶을 살려는 모든 존재에게 부여된 고귀한 선물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로워야 합니다. 외로워야 비로소 삶의 정수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사람이 어떻게 외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누군가의 보폭을 따라 걸음을 놓는 것을 거침없이 거절하고 오직 자기 본래의 모습을 갈구하고 되찾아 자신만의 보폭으로 걸어가려는 사람이 어찌 외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기꺼이 외로워야 합니다. 처절하게 외로울수록 더욱 더 자신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병신년 한 해 동안 나와 당신, 외로움과 지내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정유년이 지척입니다. 새해에도 기꺼이 외롭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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