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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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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1일 12시 0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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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나갔더니 갈치가 눈에 띈다. 제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지라 제주에서 먹은 갈치조림의 기억이 강했다. 가만히 보니 제주갈치가 목포갈치의 두 배 값이다. 제주나 목포나 갈치 맛이 다를까, “제주라는 브랜드값이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상인이 제주갈치예요. 제주.”하며 부추긴다. 심지어 갈치무더기 앞에 제주갈치. 비행기 타고 왔시유하는 문구가 박스종이에 쓰여 있다.

 

, ~ 나 어제 아침에 서귀포항에서 갓 잡아온 갈치박스를 본 사람이거든. 공연히 기분이 좋아져서는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제주갈치를 사 가지고 온다. 9일간 제주여행을 하는 동안 꼭 한 번 항구의 새벽 어시장에 가 보고 싶었다. TV로는 너무 익숙한 광경이지만 살아 펄떡이는 생선만큼이나 생동감있으며 그 어디보다 녹록치 않은 삶의 현장이 그 곳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이다. 죽 동선이 맞지 않다가 돌아오는 날 아침에 서귀포항에 갈 수 있었다.

 

아침 7. 서귀포 수협공판장의 규모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였다. 정박해 있는 몇 척의 배에서 생선이 쏟아져 나오고,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생선을 선별하는가하면, 아예 배에서 포장된 박스가 나오는 것도 있었다. 한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호루라기를 불며 지나가자, 경매번호가 쓰인 모자를 쓴 경매인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매일 하는 일이어서 그런가 물량이 많지 않은 것인가 경매는 불과 5분 남짓에 끝나고, 생선을 사고 싶으면 경매가 끝나 자기 물건을 싣는 상인에게 흥정을 붙이라고 하드만 어영부영하다 못 하고 말았다.

 

실은 몸가짐이 조심스러웠다. 1월의 제주가 이렇게 푹하구나 싶을 정도로 내내 봄날같던 날씨가 그 날 아침에만 칼바람이 불었다. 망망대해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들이 세상에서 제일 고단하게 살고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다, 겨울에 얼음을 다루는 사람들의 노동현장에 외부인이 성가시게 구는 것 자체가 민폐 같았다. 작은 글씨나마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문구도 붙어 있었으니 관광객이 많았다가는 쫓겨날 판이었다. 얼핏 봐도 갈치가 제일 많았다. 그 다음으로 조기가 많았고 나머지는 이름 모를 생선이 두 세 가지. 박스를 가득 채우고 넘쳐난 갈치꼬리들이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제주 은갈치라는 이름이 각별한 고유명사처럼 마음 한 켠에 자리잡았다.

 

제주갈치는 이번 여행의 기억이자, 제대로 된 음식의 상징이 될 것이었다. 검색을 한다고 하고 가도 식당선택에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데 베스트3에 갈치조림이 들어간다. 연로하신 엄마를 TV 앞에서 일으켜 세우고 싶어서 간 여행이었다. 쉬지 않고 반복하는 몇 가지의 기억에 제주라는 새로운 기억을 입력시키고 싶었다. 그래놓고는 지들 입맛대로 회만 먹으러 다니다가 갈치조림을 택했을 때, 엄마는 정말 맛나게 잡수셨다. 자취생처럼 단출한 살림을 하다보니 갈수록 음식솜씨가 줄어드는 나도 좋아라 먹었다. 언젠가 누군가의 생일상을 차렸는데 미역국과 잡채, 더덕구이 같은 음식 전부가 모조리 되다 만 맛이라 혼자 웃은 적이 있는지라, 음식 같은 음식은 기분좋은 포만감을 넘어 작은 감동을 준다.

 

천천히 공들여 갈치조림을 했다. 무를 깔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매실과 참기름,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은 양념은 다행히도 성공적이라 아들에게서 제주에서 먹은 맛과 비슷하다는 평을 들었다. 나로서도 갈치라고 하면 손쉽게 튀기기만 했지 몇 십 년 만에 조려본 것이니 야릇한 기분이 든다. 제주갈치를 둘러싼 일련의 느낌과 기억과 몸짓들이 소중하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경험이 전부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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