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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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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3일 00시 08분 등록

 

이번 편지는 방어적 삶을 살고 있는 당신께 한번 생각해 보기를 권하며 보내는 글입니다.

 

돌이켜보니 30대 중반, 그러니까 내가 세상의 기준을 섬기면서 그 기준에 적합한 인간으로 살고자했던 때까지 나는 방어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방어적인 삶이란 내가 그어놓은 선, 그러니까 어떤 기준이나 영역, 행동의 반경 따위를 고수하면서 그것이 침해되지 않으려는 태도로 사는 삶의 자세를 뜻합니다. 이때 나는 나의 이익과 편리를 지키기 위한 태도로 일상의 행동 방식이 굳어 있었습니다. 예컨대 회사 우리 부서 여럿이 근무하는 조건에서 어떤 궂은일이 생겼을 경우 나의 방어적 태도는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냥 바라보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서서 그 일을 감당하기를 기다리기, 그런데 상사가 지시할 경우 그때서야 움직여 일을 해소하기, 이때도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이할 것을 요구하기, 다른 사람들이 나서지 않을 경우 그들에 대한 원망이나 비난의 마음을 품기 같은 패턴의 태도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은연중에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렇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본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기로 그때가 아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숲으로 들어와 오두막을 짓기 시작하던 그날부터, 그러니까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을 열망하고 그 삶을 실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로 삶을 살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때부터 행하는 나의 모든 행위는 이전의 행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집을 짓고 땅을 일구는 하나하나 하루하루의 모든 행위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그저 내 주인된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인식하자 일만이 아니라 휴식하는 시간조차 허튼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행위가 결국 나를 위한 행위로 연결된다는 인식은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이를테면 형제자매가 모인 자리에서 예전 같으면 어떤 귀찮고 자잘한 일로 여겨 회피했던 일들, 그래서 다른 형제자매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일들을 내가 말없이, 그리고 기쁘게 나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시켜야 마지못해 하던 일들을 내가 미리 앞서서 기꺼이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저 사회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어떤 모임이나 자리에서도 똑같이 크고 작은 번거로울 일들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풀어가는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에서 나는 스스로 기뻐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내가 하고 싶지 않아 타인이 대신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직접, 그리고 능동적인 태도로 어떤 일이나 상황을 풀어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 과정에서 그렇게 스스로 기뻐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간단했습니다. 삶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순간순간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를 되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이런 문장을 남긴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령이 나오든 말든 자기의 길을 나아가라. / 앞으로 나가는 동안 괴로움도 행복도 만날 테지.” 어쩌면 괴테의 이 사유가 나의 능동적 태도와 그 기쁨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나 아닌 다른 이와 나를 견주며 작아지지도 커지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수동적 태도와 행위에 견주어 내가 하는 무엇인가를 억울해 하지도 서러워하지도, 그리고 노여워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유령이 나오든 말든 나는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저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나는 그냥 할 때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 혹시 그냥 묵묵히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때의 그 즐거움을 아시는지요? 견주지 말고 그저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여 마침내 그 즐거움을 알아채는 한 해를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일상과 노동에서 무엇인가 은근하게 채워지는 기쁨을 만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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