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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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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8일 20시 05분 등록


무심히 청소를 시작했는데 엄청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왔다. 지난 연말부터 베트남과 제주로 한 달 넘게 여행을 다녔고, 간간히 아들이 청소하는 바람에 두 달도 넘은 듯하다. 청소한 지 두 달이 넘었다는 사실이, 마치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처럼 신선해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신이 나서는 보통 때보다 세 배는 공들여,  빨래하고 난 물로 화장실 청소까지 마친다. 돌연 “청소”라는 동작이 귀찮은 의무가 아니라 리프레쉬의 의식같이 느껴지는 신선함이 좋아서 또 내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를 떠올려 본다.


차례에서도 벗어났구나..... 15년간 결혼생활을 할 때 명절이나 제사가 참으로 난감했다. 만나 본 적도 없으니 아무런 감회가 있을 리 없는 배우자의 조상을 위해, 겨우 차린 음식은 솜씨가 없어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린 적도 많았다. 죽 늘어놓았다가 이내 접시를 비우는 동작에 마음이 깃들지 않아 무슨 퍼포먼스라도 벌이는 것 같았다.(이미 결혼생활에 금이 갔을 때라 더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명절로부터도 벗어났다. 요즘 나는 명절이라는 느낌 자체가 없어졌다. 내게는 여행이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소유”로부터도 어지간히 자유롭다. 누군가 노후대책으로 “몇 년마다 한번 100킬로미터씩 후진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절대 동의한다. 산골생활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지 산골에서 살면 큰돈이 들 턱이 없다. 그렇기에 이 길어진 인생에는 (어차피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는 전제아래) 돈보다도 활기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요즘 꽂힌 제주를 예로 들자면, 제주 본섬에 접근할 수 없다면 우도 같은 부속섬까지 고려해보는 상상력과 에너지 말이다. 섬 구석에 아직 거품이 끼지 않은 작은 집 한 채 없을라구. 정서가 안정되고 자신만의 소일거리를 갖고 있으며, 세상과의 기본적인 소통이 있을 때는 신선놀음이요, 그렇지 않을 때는 귀양살이겠지만 말이다.


장차 홀가분해지고 싶은 것 중에 자녀와의 연결고리가 있다. 성격 좋고 성실하기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데도, 엄마의 노후가 너무도 초라해서 반면교사가 된다. 엄마에게 죄가 있다면 “자기”가 없었던 것 하나뿐이다. 스스로 즐기는 능력, 자신을 위해주는 습관, 자녀와의 분리... 우리 세대는 그런 엄마에게 부채의식이라도 갖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또 다를 것이니 사상 처음으로 가장 긴 시간을 부모자식이 같이 늙어갈 앞날에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두려울 지경이다. 이제 가파르게 나이들기 시작한 내 입장에서도 묘책이 있을 리 없지만 제 1조는 단단히 새겨 두었다. 기대하지 않고, 기대지도 않는다!  언제까지나 낄낄거리며 말상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해야겠다.


철없어 보일 정도로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내 행보에도 고민은 있다. 이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겪은 일이 없지 않았으나 단순한 성정으로 다 잊어버려서 편하게만 살아 온 것 같다. 여담이지만 게으른 사람이 초탈하기도 쉬울 듯. 타고난 늘어짐에 세월이 갖다 준 무심한 평안이 깊어지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공부, 글쓰기, 강의, 고령사회에 한 줄기 청량한 바람 되기(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대안 한 줄기)...  내가 관심 있는 것들에게 좀 더 치열해져야겠다고 마음먹는 이유이다. 이렇게 달관하다가는 아예 지구 바깥으로 휙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 제가 주도하는, 글쓰기입문과정 25기 모집합니다.
http://cafe.naver.com/writingsutra/15171


● 제주프로젝트는 다음 주에 답사를 다녀와야 확실한 계획이 나옵니다.


IP *.153.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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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1 13:39:53 *.120.85.98

"기대하지 않고, 기대지도 않는다! 

 언제까지나 낄낄거리며 말상대가 될 수 있기."

최고로 멋진 노년의 풍광이 그려집니다.


* 제주 프로젝트, 잘 되시길.(요즘 제주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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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3 20:19:31 *.207.19.60

지금 집을 구하러 제주에 와 있는데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열풍이 불어서  전세나 연세로 내 놓은 집은 많네요.

벌써  유채는 물론이고 매화가 피는 등 봄내음이 물씬 나서 제주가 더욱 황홀하구요.


덕담 감사해요.

신명나는 "연대 라이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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