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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00시 03분 등록

경직된 표정. 앙다문 입술. 웃어보라는데 멋쩍네요. 자격증 증명사진이 필요해서 사진관에 들렀습니다. 소파, 눈부신 조명, 카메라. 어색합니다.

“왼쪽 어깨 내리시고 허리 쭉 펴고 턱 살짝 당겨 주세요.”

주문사항이 많습니다. 사진사 앞에 긴장한 사내. 찰칵찰칵. 터지는 플래시에 시계 분침이 몇 바퀴나 돌아갑니다. 대상이 여성인 경우는 어떠할까요.


정국 혼란과 더불어 여성 대통령에 대한 비하 논란이 있습니다. 여자는 역시 안돼 라는 자조감. 정치 선진국 미국조차 유리천정을 깨지 못했었는데 라는 비아냥거림. 그래서인가요. 남성들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듯합니다. 그것도 카리스마를 폴폴 풍기는 마초형 존재로.


‘중국의 시진핑은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를 꿈꾸고, 일본의 아베 신조는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탈린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냉혹한 승부사 트럼프를 위기의 해결사로 선택한 것이다. 한반도는 세계사적인 경제민족주의 흐름을 배경으로 역대급 4대 마초형 지도자가 벌일 각축장의 한복판에 섰다.’ (2017년 01월 호 신동아)


마초(macho)는 에스파냐어(語)로 남자를 뜻하며 남성다움의 상징을 표현하는 단어로 불립니다. 상종가를 올리는 네 분 지도자의 얼굴 인상 다분히 근엄해 보이죠. 멀리 외국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얼굴도 그러합니다.

역사책에서 배운 각인된 리더 이미지는 이처럼 대개 위엄을 자랑하는 굳은 모습들입니다. 구국의 결심과 각오.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를 곱씹는 것인지요. 아니면 정치적 연출의 효과인지요. 그래서일까요. 그런 그들의 뒷모습에는 왠지 모를 외로움이 묻어 나오는 듯합니다.


결혼식장 풍경중 하나. 식이 파하고 나면 가까운 지인들이 신랑, 신부와 함께 기념사진 촬영에 열중합니다. 사진사는 신경이 곤두서있습니다. 눈 감지 마시고 웃어주세요, 뒷사람 가리지 마세요 등 단골 레퍼토리 멘트가 쏟아집니다. 시간이 흐름에도 쉽사리 작품이 나오질 않습니다. 주범은 남자들입니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역시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헤프게 실없이 웃으면 안 된다는 학습을 받아온 탓도 있겠지요.


강의 콘티 예시중 물고기 그림의 사례가 있습니다. 머리, 몸뚱이, 꼬리. 서론, 본론, 결론을 뜻하며 시나리오를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도입부분에 아이디어들을 도출합니다. 청중들은 초대된 강사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사전 모의고사 리스트를 되새기기 때문입니다. 강의는 재미있으려나. 지루하지는 않는지. 언제 마치려는지.

무대에 올라 찰나의 침묵, 긴장의 탐색 가운데 상대편에 대한 간을 봅니다. 초반에 분위기를 집중시키지 않을시 주도권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바라는 결과는 달라집니다.


“아이 양육할 때 엄마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무언지 아세요?”

뜬금없는 첫마디에 참석자들은 옆 사람을 쳐다봅니다.

“까꿍 입니다.”

나는 이 인사법을 종종 활용합니다. 긴장을 무너뜨리고 초점을 극대화하는데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두 분끼리 마주보며 잠시 파트너가 되어보세요. 서로 씨익 웃으면서 우르르르르 까꿍 하며 반갑게 인사합니다.”

난리입니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과 긴장은, 빵빵한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화기애애함으로 전환됩니다.

물론 외면하며 침묵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원수인양 서로 쳐다보지도 않으며 - 남성들의 경우는 더욱 심합니다. 경계심의 까닭이겠죠. -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이거 하려고 여기 왔나 못마땅한 속내를 내보이기도 합니다.


방송인 김제동님. 전직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그에게도 진땀을 흘렸던 대상들이 있었습니다. 교도소, 교장선생님, 고위 공무원. 공통점이 뭘까요. 잘 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상황임에도 어금니를 깨물며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꾹 참습니다. 동조보다는 네가 얼마나 잘하나 팔짱을 끼고 분석적 시각을 내세웁니다.


평균적 여성 수명이 남성보다 긴 까닭중 하나는 그녀들의 자연스런 감정 표출에 있습니다. 깔깔대며 자지러지는 모습이 경박스러움은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못하는 남성들이 문제이지요.

요양병원 환자들의 얼굴을 보신 적이 있나요. 생의 종착역에 서있기에 더욱 표정이 없지만 그곳에도 성별의 차이에 따른 구분이 나타납니다. 대변으로 병상 하얀 시트를 물들이고, 시도 때도 없이 간호사를 외치며, 희멀건 눈동자로 하루 종일 천정만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어르신들. TV속 개그 프로에 박장대소를 하며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또 하나의 그룹. 웃을 일이 없음에도 최악의 상황임에도 밑바닥 희망의 그물을 쳐올리시는 분들. 누구일까요.


현직 대통령을 바라보노라면 부친의 엄격함, 단호함, 굳고 차가운 이미지가 되살아나곤 합니다.

혹시 그녀는 마초로 포장되길 원했던 건 아닌지요.

의도적 강인함이 아닌 본래의 부드러운 여성의 결을 키워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IP *.134.217.44

프로필 이미지
2017.02.24 20:38:11 *.120.85.98


빙고!


어떤 수컷들은 온몸에 후까시로 무장을 하곤 하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지위가 높아질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영혼이 자유롭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후까시 없는 형님의 웃는 모습이 스쳐지나갑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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