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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6일 13시 11분 등록

 

1. 신화의 기원을 찾아 다시 그리스 

 

2017.8

자꾸만 도착하는 편지였다. 어디를 가도 따라다니던 편지. 하지만 그녀가 편지를 이해한 것은 2017년 이른 봄. 21일을 기약하고 시작한 디톡스 프로그램중 별안간 그곳으로 떠난 동료 덕분이었다. 2010년 그리스에 다녀와 그녀는 썼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에게해를 가져야한다고. 이번엔 돌아오는 티켓을 취소하는 용기를 낼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편도 항공권만 들고 그를 찾아가는 날이 올거라고. 그날 크루즈 갑판에 누워 바라보던 에게해의 별하늘, 자기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 번도 외워 불러본 적이 없는 그 노래가 그녀의 혀끝을 타고 흘렀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분위기에 취해 적당히 읊조리는 것일 뿐이라고. 그러나 한 번도 함께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던 그들은 정확히 같은 가사를 불렀고 그것은 우연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설정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가설을 하나 갖게 되었다. 하늘에는 무수한 열쇠구멍이 나 있는 게 분명하다고. 우리들은 각자의 열쇠를 몇 개씩 품고 태어나는 걸 거라고. 어쩌면 삶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열쇠로 열 수 있는 열쇠구멍을 찾아내는 게임일지도 모른다고. 어떤 구멍은 좀 커서 한 사람의 열쇠로는 그저 헛돌기만 할 뿐, 알맞은 상대를 만나면 둘이 가진 열쇠들이 만나 더 큰 새로운 열쇠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거라고. 그렇게 꼭 맞는 열쇠구멍을 찾아내면 우리를 위해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하늘의 선물들을 이 세상으로 데려와 쓸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해 준 많은 것들도 다 그렇게 하늘로부터 배달된 것이라고.

 

그날 에게해 하늘에게서 받은 선물로 7년을 살았다. 그날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노래를 부를 기회를 놓쳤더라면 그녀의 것이 아니었을 삶이었다. 그리고 이제 에게해가 다시 그녀를 부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리도 분명히 신호를 보내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저항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여행기간은 15일, 이미 예정된 큰 아이의 축구 전지훈련 일정에 맞춰 티켓팅을 했다. 전지훈련에서 돌아오면 이웃에 있는 친구네에서 잠시 신세를 지는 걸로. 작은 아이는 그리도 소원하던 외할머니댁에서 15박. 남편은...음...그녀와 함께 산지 만 13년, 이제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이런 눈빛을 한 그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다만 비용은 철저히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영혼의 관리비까지 청구하는 건 너무 염치없으니까.

 

4년간의 실험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론칭을 앞둔 프로그램의 가격은 정확히 여행비용에 근거해 책정되었다. 삶을 걸고 만든 컨텐츠였다. 하지만 결코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가격이 적당할지 기준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마냥 무료프로그램을 고집할 수도 없었다. 4년간의 실험을 통해 ‘가격 = 가치’라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의 명백한 룰은 거스르는 것보다 활용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접근 자체를 어렵게 해서 안 될 일이었다. 자신에게도 또 참가자들에게도 각자의 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딱 그 지점이면 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50%의 결정권을 가진 그녀 자신의 기준점이 설정된 것이다. 이제 그녀 기준을 세상이 받아들여줄 지가 남아있을 뿐. 그런데 하나도 걱정이 안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례를 체험하면서도 차마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던 가설’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입증해 보일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니까. 그러니 어느 쪽이라고 해도 손해될 것 없지 않은가?

 

 

2. 새로운 언어, 기타

 

2017. 9

 

또 시작했다. 이번엔 기타. 햇살 부서지는 옥상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멋들어지게 불러제끼던 잿빛 머리칼의 그녀 때문만은 아니다. 큰 욕심도 없다. 그저 딱 다섯 곡만 부를 수 있게 되면 그걸로 족하다. 이것이 그녀가 하루가 어찌가는지 모를 만큼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다시 욕심을 낸 이유다. 일주일에 딱 한번 그녀는 세기의 기타리스트가 된다. 물론 그녀의 머릿속에서만. 딱 맞는 선생님을 만나 이리 시작했으니 이제는 시간만 흘러주면 되는 거겠지? 기타를 잡은 그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실 줄을 모른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비장의 5곡을 풀어내고 있는 스스로를 만나고 있는 모양이다.

 

 

 

3. 그녀의, 그녀에 의한, 그녀를 위한 책 <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출산

 

2018. 2

 

드디어 나왔다. 스승께서 ‘봄날 흩날리는 벚꽃같을 거라시던’ 첫 책.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신화를 가진 여인으로 새로 태어나자는 메시지를 세상에 꽃비처럼 흩뿌린 책. 엄마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굳은 믿음의 씨앗을 나르는 홀씨같은 책. 그녀를 살고 싶은 그 삶으로 데려다 준 마법의 양탄자 같은 그 책.

 

시작은 2017년 2월 26일 새벽이었다. 스승이 이르신 것은 무엇이든 완벽히 소화해 제 것으로 만들곤 했던 그녀에게도 새벽 집필만은 좀처럼 가까이 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7년의 좌절이 겹치니 이젠 농담으로라도 새벽에 일어나겠다는 말을 입밖에 낼 수없게 되었던 그녀. 그런 그녀가 눈을 떴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하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읽어주는 글을 받아적 듯이 술술술. 이제는 더 이상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체념하던 그녀가 다시 쓰기 시작했다.

 

더 비움을 시작할 때 그녀는 말했다. ‘책쓰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고 싶다고’ 이상하게도 움직일 줄 모르는 체중계 숫자에도 흔들리지 않고 21일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기대 때문이었다. 표시는 나지 않지만 내 몸 어딘가에선 꼭 필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그리고 마지막 날. 전에 먹은 수분 덕분이었다. 그날 새벽 터질 것 같은 방광의 압박이 아니었더라면 그녀에게 오늘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 이렇게 주시는 구나. 신은. 그러니까 ‘더비움’은 신들의 수련장이었던 거구나. 그렇게 신화는 소리없이 만들어지는 거구나.

 

4. <해피맘CEO 진로학교> 2호 직영점 오픈

 

 

2019.2

 

<해피맘CEO 진로학교> 새학기 준비가 한창이다. 2017년 스스로 몸과 맘이 행복한 경영자로 성장해 가족들과 친구들도 그런 삶의 길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해피맘CEO 진로학교>도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일반 공개에 들어갔다.

 

지난 2년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어 갚아나간 덕분에 집 구매당시 심각한 우울증을 앓을 만큼 부담스럽던 대출금을 모두 털어내면서 그간 몸에 붙은 절약과 투자 근육을 기반삼아 조금 공격적인 꿈을 갖게 되었다. 같은 건물에 집 한 채를 더 구매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컨텐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를테면 <해피맘CEO 진로학교>의 제2호 직영점을 연 셈이다.

 

 

지난 2년간의 성과로 검증받은 <해피맘CEO 진로학교>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100세 시대,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긴 삶을 남겨둔 엄마들의 신화 만들기 프로그램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아이와 엄마가 꿈벗으로 익어가는 시간 <엄마랑 꿈벗>, 국경을 너머 재능을 펼치도록 돕는 <글로벌 탤런트 프로젝트>, 이 모든 프로젝트의 기반이 될 우리 안의 시심조우 프로젝트 <뽕공자연교감 소풍> 등등. 스승에게서 받은 철학의 씨앗을 나누어 가진 그들은 <해피맘CEO 진로학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고,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수준 높은 프로그램과 선생님들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엄마와 아이들의 세계에도 아름다운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하여 정말로 이렇게까지 서두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아직은 조금 더 조용한 삶을 누릴 작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청에 반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리 간절한 소망은 어떻게든 이루어주는 게 ‘정의’니까. 정의라면 둘째가는 것을 못 참아하는 그녀니까.

 

 

5. 세상에 하나뿐인 짝꿍, 그안의 <아이도 기다리는 시간>

 

2019.4

  

“보물섬같아~!! 어쩌면 이렇게 귀신같이 내가 원하는 바로 그 걸 내어놓는 걸까? ”

 

흥분한 그녀는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토요일이면 남편의 손을 잡고 산책 나오는 황학동 도깨비 시장. 부부의 보물탐험이 시작된 것은 그 해 봄이었다. 더 비움 클로징 미팅이 예정되었던 그 주. 그 말했다. 일요일에 당직이라고.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했다. 3주전부터 계획되었던 모임이 토요일에 있었다. 새 삶을 위한 몸과 마음을 세팅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던 만큼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아니 방해하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것이 설사 벌써 13년을 함께 한 절친이었다 해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침 그날이 불편한 동료들이 많았던 것 뿐이었다. 그렇다고 다음주로 넘기는 건 뭔가 타이밍을 놓치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일요일엔 남편이 집을 비운다고 했지. 마침 딱 좋네. 마지막 모임은 더비움식 포트락 파티로 진행된다고 했고, 아무래도 그러자면 가정집 부엌만큼 더 좋은 환경도 없을테고. 문제는 양수오빠가 꼭 그 장소를 써야하는 이유가 있는지만 남아있는 거네.’ 양수오빠가 그런 것 없다고 하셨다. 그럼. 결정!!

 

이렇게 의식은 무사히 그 다음날로 세팅되었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토요일 그를 따라 나선 것도 푸근해진 마음 덕분이었다. 복직해 회사를 다니던 시절부터 주말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하는 그녀를 위해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가곤 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자기 일정으로 바빠진 아들아이와 달리 딸아이는 아빠가 나설 채비를 하면 시키지 않아도 외출 준비를 했다. 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나보다. 좋은 일이지. 때론 혼자 집을 나설 때도 있었다. 그래, 그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렇게 주말은 부부에게 각자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봄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황학동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체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 ‘이런 것도 사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싶은 고물들에서부터 아무 것도 모르는 눈에도 제법 값나가 보이는 골동품까지 희한한 물건들로 꽉 찬 거리. 처음부터 무슨 작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한참을 찬장에 넣어두었던 차잎을 걸러 마실 수 있는 주전자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선물받은 티백들 덕분에 굳이 꺼내지도 않던 차들이었다. 마침 티백들도 다 떨어졌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와 함께 나눠마시기에 딱 좋은 분량이 들어가는 모래시계같은 주전자면 좋겠다 싶었다.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그녀는 반짝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며 만져보고 귀기울여 보고. 그는 솜씨좋게 이곳 저곳으로 안내하며 그녀가 머무는 곳마다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날 무렵 그의 배낭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속에 나올 법한 자기 손잡이 달린 놋주전자가 담겨있었다. 하늘을 향하는 새와 사슴그림이 새겨진 적당한 컵 하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는 나른히 졸고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을 느꼈던 걸까? 조용히 눈 뜬 그가 말한다.

 

“ 당신이랑 노니까 참 좋다. ”

 

그랬던 거군요. 저랑 더 많이 놀고 싶었던 거군요. 그런지도 모르고 오해했어요. 저의 자유를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딴지를 놓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얻게 된 자유인데...그걸 방해하는 사람은 누국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한 번만 더 훼방 놓으면 그땐 정말 참지 않을거라고.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의 그 투정이 이젠 제발 나도 쳐다봐 달라는 S.O.S 신호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이야말로 제가 그리 힘들게 얻은 자유의 공동소유권자라는 것도.

 

그 날 이후 부부는 다시 연인이 되었다. 이제 일주일중 하루는 오롯이 그를 위해 비워놓는다. 하루는 이틀이 되기도 하고 일주일이 되기도 하며, 황학동이 되기도 하고 터키의 그랑바자르가 되기도 한다. 그녀의 시간 속에 그는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다.

 

 

6.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탐험으로 여는 스무 살 

 

 

2024. 5

 

엄마, 저는 지금 이탈리아가 시작되는 프랑스 끝마을 망통이예요. <je me souviens de l'avenir> 기억하세요? 벌써 10년이나 흘렀지만요. 그 해 가을 바로 여기 장콕도 미술관에서였어요. 엄마가 말했죠. “창훈아, 미래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고, 느끼지 못하는 현재란다.” 그날 난 우리 엄마가 또 시작하셨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서영이랑 해변으로 뛰어나갔죠. 햇살 부서지던 그 빛나던 해변 말이예요. 그 해변에서 꼭 지금의 제 나이였던 서희누나는 그날 처음 만난 까만 피부의 러너의 눈 속으로 빠져버렸죠. 우리가 타고 떠난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저씨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버스 안에서 생각했죠. ‘어른들이란 참 알 수 없다니까~’

 

특별히 작정하고 여기에 온 것은 아니예요. 떠날 때 말씀드렸듯이 그저 파리행 편도 비행기 하나만 예약한 채 시작한 여행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파리에 도착하는 순간 10년 전의 그 여행이 막 그리워지는 거예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루트라도 확인하고 올 걸. 그리고 무작정 가이드 사장님의 연락처를 검색했죠. 엄마 책장에 꽂혀있던 <프랑스 문화와 예술>이란 책이 떠올라 수월하게 사장님과 연락이 닿았어요. 마침 사장님도 봄맞이 나들이를 준비하던 참인데 조수로 따라가지 않겠냐고 하시잖아요. 물론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엄마도 알고 계셨어요? <파리 그리고 프랑스로 간다>, <신화와 철학, 성경으로 보는 지중해 문명> 이 책이 다 사장님께서 쓴 책이래요. 아니 기억 나는 것도 같아요. 엄마에게 들은 것도 같고.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사장님이랑 여행을 하다보니 엄마가 왜 그렇게 ‘신화’와 ‘철학’을 끼고 사시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엄마, 벌써 떠나온지도 두 달이 넘었네요. 친구들은 지금쯤 캠퍼스의 봄을 즐기고 있겠지요? 하지만 전 저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처음엔 좀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제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아직은 스스로에 대해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은데 벌써부터 전공의 틀에 갇히고 싶지 않았거든요. 물론 엄마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는 것도 알아요.

 

‘I remember the future'

 

오늘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다시 보며 생각했어요. 엄마는 기억하고 계셨던 거죠? 제가 이 곳을 다시 찾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그날만큼이나 햇살이 아름다운 그 해변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리라는 걸. 엄마. 어쩌면 전 그녀를 만나기 위해 10년을 기다려왔는지도 몰라요. 이제는 그날의 엄마를, 그날의 서희누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저도 어른이 되었나봐요.

 

 

내일은 그녀와 이탈리아로 들어가요. 사장님은 여기서 파리로 돌아가신다네요. 이제 본인의 역할은 다 끝난 것 같다며. 사장님만은 여전히 알쏭달쏭. 그러나 언젠가 그분을 이해할 날도 오겠죠? 뭐. 어쨌든 지금은 너무 좋으니까.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서 아들 창훈 올림.

 

7. 하늘을 날아오를 거야, 발레

 

2024. 10.29

 

가을바람이 감미롭다. 운동을 마치고 맞는 바람보다 더 달콤한 바람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오늘은 공연 전 마지막 총연습이 있었다. 비록 그녀와 벌써 20년을 한께 한 남편마저도 무대 안의 그녀를 찾아내는데 한참이 걸릴 만큼 작은 배역이지만 그녀 안에 솟아나는 충만감만큼은 주연배우에 못지않다. 그녀가 다시 슈즈를 신은 것은 2017년이었다. 15년 다니던 직장을 떠나 명실상부한 자유인으로 맞은 첫 해. 무리해 산 집의 대출금을 절반으로 줄어든 수입으로 감당해야하는 녹록치 않은 상황.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시간, 그리도 원하던 자유시간을 비로소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남편의 월급만으로 이루어진 수입 안에서 그녀 자신만을 위해 책정할 수 있는 금액은 10만원을 넘길 수 없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요가와 필라테스를 듣고 나면 책 두 권을 겨우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수업의 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업료에 두 자녀 혜택으로 10%까지 할인까지 받을 수 있는 요가와 필라테스. 아니 어쩌면 충분히 좋았는지도 모른다. 유난히도 힘들었던 직장생활의 마지막 2년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과 마음을 이 정도까지 추스릴 수 있었던 것도 주말을 뺀 매일 아침 1시간씩 지켜온 운동덕분이었다. 게다가 몸이 가벼워지면서 전에는 엄두를 못 내던 달리기까지 시작한 상황이었으니 굳이 발레까지 더 할 필요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꾸만 마음이 끌렸다. 그해 이른 봄 연구소 동료들과 함께 한 ‘더 비움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 나는 5년 동안 장롱 속에 쳐 박혀 있던 레오타드를 꺼내 입었다. 2010년 연구원 수련을 하면서 발레라는 단어를 처음 입 밖으로 내었다. 말하면서도 무슨 주책인가 싶었다. 뜬금없이 발레라니. 그 해 터키의 소피아성당에서 그녀를 보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나 이룰 수 없는 로망의 하나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는 더 이상 미룰 이유를 댈 수 없었고, 그렇게 시작된 발레 수업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12년 3월까지 1년 반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말 그대로 ‘눈 코 뜰 새 없는’ 엄마의 시간을 점유하기에 소피아에서의 환상은 지나치게 ‘환상’적인 명분이었다.

 

르네상스의 스폰서, 메디치가의 딸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궁으로 시집가면서 전한 재생의 씨앗중의 하나. 하늘을 날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고된 발끝 서기를 본질로 하는, 물리학의 용어를 빌리면 지표면으로 떨어지려는 속성인 '중력'을 부정하는 춤.

 

그날 동료들과 함께 나눌 꿈 풍광을 작성하며 처음 찾아본 발레의 유래. 그렇구나. 그래서 그리도 집요하게 나를 떠나지 않았던 거구나. 발레 스튜디오에서 3분거리에 새 삶을 위한 터전을 꾸민 것도, 예상을 살짝 웃도는 수준의 퇴직금이 입금된 것도, 운 좋게도 ‘더비움 프로젝트’의 첫 수혜자가 된 것도 모두 다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그렇게 다시 발레를 시작한 지도 이제 8년, 그녀의 몸 구석구석까지 보기 좋게 자리잡은 발레리나 근육. 올해로 쉰을 맞은 여인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우아한 선.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창작 발레의 제목은 ‘0000’, 상처입은 여인 엘렉트라가 천여년을 거슬러 한반도에 다시 태어나면서 시작되는 대 서사시. 하늘의 이치를 사는 스승을 만나 동굴 속에서 자신의 오랜 상처를 보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같은 상처를 각진 이들을 치유하는 힘을 갖게 된 그녀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펼치는 여인의 神話, 女神 이야기의 원작자는 그녀 자신이다. 출연자와 관객을 막론하고 그 공간에 있는 모두를 여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공연을 위해, 그녀 안의 또 다른 여신을 연기하는 그녀. 이렇듯 꿈보다 더 꿈같은 삶의 주인공.

 

“엄마~!!”

 

스탭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뒤따라 나오는 딸 서영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8. 우리가 되지 못 할 너는 없다,  민족통합 프로젝트 '더 아름'

 

 

2026.12

 

“허허허, 박선생. 내레 요새 사는 게 왜 이래 재밌는지 모르갔시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 중에 유난히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 강**. 말투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북에서 왔다. 해외무역요원으로 수 십년을 근무하다 북한 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탈북을 결정했다는 그.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남쪽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해외근무를 오래한 덕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타고난 촉에 수완까지 겸비한 그는 넉넉한 한국생활을 위해 적지 않은 비자금까지 준비해 둔 터였다. 예상대로였다면 부족할 것이 없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붉어졌다. 활달한 성격에 해외 어디서든 잘 적응하던 딸아이가 집밖을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그 걸 꼭 말로 해야 안 단 말인가. 보장 받은 출신성분 덕에 북에 있을 때부터 아쉬움을 모르고 살던 강**이었다. 그 때 북으로 돌아갔어도 어느 정도의 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었을 텐데 돌이켜보면 그 때의 오판이 모든 것은 망쳐놓았다. 답답한 체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본인이라면 남북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충분히 쓰임새가 있으리라는 사명감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만난 것은 5년 전이었다. 병색이 완연한 그의 몸에 습관처럼 밴 경계감이 그녀를 휘감았던 기억이 난다. 민족의 사명인 통일을 가로막는 장벽은 다름 아닌 우리 마음안의 그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대대적인 민족통합 프로젝트 <더 아름>. 작은 노력이 모이고 쌓여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지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도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띄는 가슴을 가진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하나라는 것을. 우리를 나누는 장벽은 이렇게 허물어져 지도록 운명지워졌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몸과 맘이 함께 행복한 경영자로 다시 태어났고, 그런 서로를 우리는 <해피맘CEO>라고 부른다.

 

오늘은 각계 각층의 <해피맘CEO>들이 한자리에 모인 송년파티가 있는 날이다. 남과 북은, 남과 여의 경계는 더 이상 전선이 아니다. 다르기에 더 아름다운 우리. 그런 우리에게 세상은 더 없이 아름다운 배움터요 놀이터일뿐. 이제 우리는 누구도 더 이상 ‘세상이 전쟁터’라고 말하지 않는다.

 

 

9.  Museum 女神

2027. 10

 

헤진 스크랩북을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내년 봄 개관을 앞둔 < Museum 女神 >을 위한 디자인 북, 5년 넘게 손때가 묻은 바인더북을 펼치며 전화를 건다.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와 상의할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실장님, 역시 스테인 글래스가 좋을 것 같아요.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 성당 느낌을 담고 싶거든요. ”

 

“ 그건 생각을 좀 해보시겠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싶으시다고...”

 

“ 맞아요. 그랬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이유가 없겠더라구요. 우리는 한국인이기 이전에 모두 지구인이니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날 스테인 글래스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던 햇살도 분명히 뭔가를 해주었던 것 같아요. 이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낡은 존재가 무너지고 새로운 삶을 위한 무두질이 시작되는 몸의 체험을 선물하고 싶어요. 그 느낌으로만 비로소 시작되는 여행으로 그들을 초대하고 싶으니까요. ”

 

“ 아~~ 그 느낌. 선생님 책에서 읽은 적 있어요. 오래 꿈으로만 갖고 있던 이야기를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던 바로 그 느낌이잖아요. 읽으면서 그 느낌이 어떤 걸까 정말 궁금했었는데...그런데 아직 그 느낌을 모르는 제가 그걸 표현해 낼 수 있을까요? ”

 

 

“ 실장님이 어떻게 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지 잊었어요? 실장님 안에 저와 겹쳐지는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지금 영문을 알 수 없는 주문을 하고 있고, 실장님은 하우투가 떠오르지 않은 이 황당한 주문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해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우리가 가진 오랜 습관이니까요. 그 습관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 공간은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거예요. 바꾸어 말하면 이 공간이 완성된다면 그건 이미 공간이 기능을 시작했다는 의미가 되겠죠? ”

 

오랜 도심 생활을 접고 그녀가 머물 공간은 박물관에서 10여분 걸어가면 있는 호수 근처다. 엄청난 스케일의 박물관과는 대비되는 그녀의 사적 공간, 그녀보다 딱 100년 먼저 세상에 온 카를 융에게서 받은 실마리를 그녀 자신의 삶으로 구현한 공간. 융은 회상했다.

 

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서 우러나는 확신과 자부심이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분명한 전체성과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체성은 아이, 집, 작은 가축, 샴바(텃밭),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요소인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를융의 <기억 꿈 사상> 중에서

 

 

10.  스승 안에서, 스승을 너머

  

2028.4

 

 

그가 떠난지 벌써 15년. 그를 보내고 알게 되었다. 육체의 소멸을 ‘죽음’이라 부를 수 없음을. 그는 떠났지만 어디에도 그가 있다. 2017년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유행하던 시절 그녀는 생각했다. 그도 도깨비 같을 것이다. 어디선가 절실함으로 자신을 소환하는 그들을 마음을 다해 돌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너무 자주 그를 부르지는 말아야지. 그를 만난 지도 이제 7년, 이젠 정말 자립할 때도 되었으니까. 새로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을 돕기에도 이미 너무나 분주할 그를 떠올리며 이제는 더 이상 울지 말아야지.

 

그러나 오늘은 예외다. 일년에 딱 하루 그를 향한 그리움을 마음껏 표현해도 되는 날. 어차피 오늘은 다른 어디에 가시면 안 되는 날이니까.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인 날이니까.

 

“사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부님을 만나 제 삶은 비로소 날아올랐습니다. 날개를 가지고도 감히 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마당안의 암탉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다른 새들을 향한 부러움과 그들처럼 태어나지 못한 원망으로 시간을 낭비하던 암탉이 드디어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창공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사부님 덕분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맺어주신 인연 덕분이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 은혜는 사부님의 제자로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갚아나가겠습니다. 사부님, 사부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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