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 조회 수 1742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니, 온통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특검의 수사가 오늘 끝났다, 탄핵을 원한다, 탄핵이 되면 안된다, 는 의견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습니다. 몇 개의 기사를 보고는 지하철 창밖의 한강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역사 시간에 배운 지도자들이 국민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미국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일 때, 단 3분짜리의 게티즈버그 연설로 미국을 분단 위기에서 지켜낸 링컨 대통령.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며, 전쟁을 꼭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히틀러의 저지’에 있음을 설득했던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후손이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판단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절규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라고 힘주었던 백범 김구.
역사에 남은 연설은 국민의 마음을 모아 국가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습니다. 그들은 국난을 극복하고, 역사의 길을 바로 잡기위해서 늘 국민들 앞에 서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연설’을 통해서 국민들의 가슴에 붉은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문득, 마크 로그의 저서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이 책은 영화를 본 후에 책을 찾아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영국의 황태자였지만, 말을 더듬었던 조지 6세(재위:1936~1952)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는지 보여줍니다. 조지 6세는 이혼의 경력이 있는 미국인과의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렸던 형 에드워드 8세를 대신해 1936년 영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런던을 떠나지 않고 시민들과 생사를 함께 한, 영국 역사상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왕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앓았던 말더듬증과 병약한 심신 때문에 왕으로서의 자질을 의심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영국 근대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대에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호주 출신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이 책은 조지 6세가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오랫동안 언어치료를 받는 과정을 덤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1939년 9월 3일. 조지 6세가 전 국민에게 생방송으로 라디오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국민 여러분은 이 시련의 시기에 침착하고 꿋꿋하고 단결해 주십시오. 앞길은 험할 것입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우리는 이 도전에 대처해야 합니다."
그는 영국이 독일에 전쟁으로 맞설 것임을 국민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진심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6년 동안의 세계대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경제적 궁핍함을 견디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지하철에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습니다. 조는 사람을 빼고는 대부분이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지구 저편의 소식이 전달되는 시대. 이렇게 정보가 빠르게 오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지도자와 국민들의 소통에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국가를 지키기 위해 밤을 새워 연설문을 고치고, 또 고쳐서 말을 더듬었던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던 조지 6세. 연설에 관련된 뒷이야기를 다룬 ‘킹스 스피치’가 주는 감동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몇 달 동안 나는 계속해서 (연설문 연습하는 것을) 실천하고 어디를 가나 연습하면서 절대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 이제는 (연설을 할 때) 어느 곳에서 잠시 숨을 쉬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미리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되었소. 당신과 함께 연설에 대한 기초를 튼튼하게 다졌기 때문에 거센 파도가 밀어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소. 입을 벌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확실히 전보다 크게 벌어지는 것을 느끼오. 그대도 ‘King’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기억하실 거요. 나는 선상에서 매일 저녁 식사 때 그 말을 하오. 이제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소. (p.112)
-------------------------------
안녕하세요? 저는 변화경영연구소 2기 연구원 정재엽입니다.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격주로 <일상에 스민 문학>이라는 주제로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이아몬드와도 같은 반짝이는 문학작품을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동안 매주 수요일에 마음편지를 통해 진솔한 마음을 전달해주셨던 한명석 선생님께 감사말씀 전합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377 | 삶의 여정: 호빗과 함께 돌아본 한 해 [1] | 어니언 | 2024.12.26 | 339 |
4376 | [수요편지] 능력의 범위 | 불씨 | 2025.01.08 | 403 |
4375 | [수요편지] 삶과 죽음, 그 사이 [1] | 불씨 | 2025.02.19 | 407 |
4374 | [수요편지] 발심 [2] | 불씨 | 2024.12.18 | 432 |
4373 | 엄마, 자신, 균형 [1] | 어니언 | 2024.12.05 | 453 |
4372 | [목요편지] 별이 가득한 축복의 밤 [3] | 어니언 | 2024.12.19 | 503 |
4371 | [목요편지] 육아의 쓸모 [2] | 어니언 | 2024.10.24 | 568 |
4370 | [수요편지] 언성 히어로 | 불씨 | 2024.10.30 | 664 |
4369 | [목요편지] 두 개의 시선 [1] | 어니언 | 2024.09.05 | 675 |
4368 | [수요편지] 내려놓아야 할 것들 [1] | 불씨 | 2024.10.23 | 692 |
4367 | [내 삶의 단어장] 크리스마스 씰,을 살 수 있나요? [1] | 에움길~ | 2024.08.20 | 696 |
4366 | 가족이 된다는 것 | 어니언 | 2024.10.31 | 698 |
4365 | [수요편지] 타르 한 통에 들어간 꿀 한 숟가락 | 불씨 | 2024.09.11 | 706 |
4364 | [수요편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1] | 불씨 | 2024.08.28 | 709 |
4363 | [수요편지] 레거시의 이유, 뉴페이스의 이유 | 불씨 | 2024.10.02 | 717 |
4362 | 관계라는 불씨 [2] | 어니언 | 2024.12.12 | 717 |
4361 | [목요편지] 장막을 들춰보면 | 어니언 | 2024.08.22 | 730 |
4360 | [수요편지] 문제의 정의 [1] | 불씨 | 2024.08.21 | 737 |
4359 | 며느리 개구리도 행복한 명절 | 어니언 | 2024.09.12 | 745 |
4358 | [수요편지] 마음의 뺄셈 | 불씨 | 2024.10.16 | 7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