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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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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4일 20시 35분 등록

서울에 상경 처음 만난 겨울 풍경. 지방 분지에서 살았던 터라 설경 보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하얗게 마을을 뒤덮는 눈에 설레어 얼마나 취했던 지요. 동심으로 돌아간 양 시린 손을 비비며 눈을 뭉쳐 마늘님과 까르르 장난을 치고, 첫길 발자국을 남기며 행복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해. 맑던 하늘에서 내리던 눈이 제법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머. 자기야. 너무 예쁘다. 영화 ‘러브레터’ 에서 여배우가 오겡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라고 외치던 장면 기억나지. 그때도 눈이 이렇게 내렸었는데. 기분 좋다. 우리 연애시절 생각도 나고. 휴게소 내려 커피한잔 마시고 가자. 오랜만에 함께 걸으며 눈싸움도 해볼까.”

아내는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 학업문제로 며칠 신경을 쓰더니 내리는 눈이 그녀 마음에 쌓인 모양입니다. 허참. 여자들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일까요.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시에 3월에 눈이 온다고 하였지만 이 계절에 무슨 난리람.

“얘가 지금 정신이 있니 없니. 나 운전하는 것 안보여. 내가 눈 보면 한이 맺히는 사람이야. 강원도 군대 근무할 때 고생한 것 생각만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는데. 거기다 우리 돌아올 길도 생각해야지. 사고 나면 네가 책임질래. 눈싸움은 무슨 얼어 죽을. 네가 나이가 얼마인데. 그러니 애들한테도 엄마가 철이 없다는 소릴 듣지.”

“…….”

가슴 설레 했던 아내. 비 맞은 중마냥 풀이 죽습니다.


TV 뉴스.

“멍 때리기라고 들어보셨죠. 돈을 내고 참가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찾아보았습니다. 식사시간. 종이 울리면 먹던 동작을 일시에 멈춥니다.”

고요함. 특별한 커리큘럼보다는 생각과 사념을 내려놓고 그 순간에 젖어드는 경험. 아나운서 멘트가 귀에 남습니다. 돈을 낸다...

지난해 명상 공부를 하였던 곳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편안히 앉은 자세에서 교수는 시작종을 칩니다. 허리를 펴고 숨을 깊게 들이 마셔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늦을까봐 헉헉대며 달려와 앉아 있으려니 여러 상념이 꼬리를 칩니다. 다음 주 미팅 계획, 해결되지 않은 문제, 사람과의 갈등. 졸음도 찾아옵니다.


바쁘게 살아갑니다. 모두들 핸드폰 화면에만 머리를 숙인 정지화면들. 한가롭게 신문을 바스락거려보지만 어느덧 이질적 장면. 머쓱한 느낌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 알람에 일어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서둘러 출장길. 문자 체크 및 전송. 못 다한 잠이 쏟아지지만 빨갛게 눈을 비비며 강의 준비. 그러다 고개 들어 바라본 창밖의 세상. 빨간 해가 솟는 가운데 펼쳐진 너른 하늘 물결. 날마다 돌아오는 아침이건만 아~ 좋네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지만 한정된 공간의 프레임이 발 디딘 현실을 느끼게 합니다. 호사. 잠시나마 그곳에 멈춰 동행합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너무 앞만 보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눈 내리면 아름다움보다는 진흙탕 길 튀길 바지의 염려에

낙엽 떨어지면 운치보다는 한해 지남의 서글픔에

기차를 타면 휴식이 아닌 노트북 작업 공간으로의 한정으로.


남편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답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대학과 힘든 취업관문을 통과하여 그녀와 결혼. 아이가 태어났지만 기쁨도 잠시. 생활비며 학원비. 허리띠를 졸라매보지만 적잖은 봉급생활에도 서울 번듯한 집 한 채 대출 없이는 장만하기가 어렵습니다. 거기다 치고 올라오는 새파란 후배들. 실적과의 전쟁. 연말이면 가슴 졸이는 인사고과. 흰머리가 늘어나고 힘은 점점 딸려오는 가운데 어느덧 들어선 중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이후엔 무얼 하며 먹고 사냐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반복되는 아침 출근길. 아내가 어쩐 일로 현관문까지 나와 서류가방을 챙겨줍니다.

“여보.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데. 사랑해^^”

허참.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람. 생각해보니 얼마 전 그녀가 밤새 보던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입니다.

일일 개업 닭 집이 열 군데가 넘는 가운데 폐업 개수가 여덟 곳이라는 기사에 가슴이 먹먹하지만 웃음이 나옵니다.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으려나요. 심호흡 크게 하고 조금의 여유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꽃피는 춘삼월. 햇살도 좋은데 동료랑 점심 식사 후 공원에 산책을 나가볼까요.

IP *.39.23.162

프로필 이미지
2017.03.06 01:23:00 *.148.27.35

멋진 형수님을 두셨군요.

저~만치 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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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 09:06:47 *.45.30.238

우리의 삶은 다소 차이가있겠지만 삶의 무게는 비슷한것같습니다. 특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에게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이기보다 앞을 향해 나아가야할것같습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지금 이순간 순간의 기쁘고 감사한일을 찾으면 그게 행복한 삶의 시작이 될수도 있을것같습니다.

 

글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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